‘저널리즘 J’라는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올 상반기까지 반응이 뜨거웠다. 내부 조직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또 대한민국 언론 전반에 대한 비평의 칼날을 날카롭게 휘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상예술대상에 TV부문 교양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도 초반의 열기는 많이 식은 듯하다. 그 날카로움이 KBS의 혁신을 일으키기에까지는 그 힘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조차 의구심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무엇이? 왜? 바로 라이언 홀리데이의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라는 책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속성이 이렇게 더럽고 이해타산적인 것이었나 하는 실망감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이 물 건너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즘 가짜뉴스와 자본과 이해관계로 왜곡된 뉴스보도 때문에 큰 골치를 앓고 있으니. 유튜브가 모든 쓰레기 뉴스의 진원지가 되면서 더 심해진 인상이다. 미국의 경우 타락한 저널리즘의 폐해가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는 실제로 여론 조작 전문가로서 많은 성과를 올리고 이익을 챙겼던 저자가 미국 미디어 산업에 대한 절망적인 현주소를 폭로하고 있는 책이다. 특히 블로그로 대표되는 온라인 미디어 생태계의 확장이 장점보다 단점으로 더 부각되고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흔히 저널리즘 하면 엘리트스럽고 보통 사람들보다는 스마트한 이미지를 주게 마련인데 이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아래를 향한 본성이 정설인 것일까 하는 무력감을 주었다.
주류 언론까지 근거와 검증이 전무하다시피한 뉴스 소스를 그대로 내보내고, 해프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지경까지 이르게 하는 ‘페이지뷰 저널리즘’의 실상은 매우 놀랍고 참혹한 것이었다. ‘페이지뷰 저널리즘’이란 쉽게 말해 조회수를 많이 올리기만 하면 다른 요건은 아무래도 좋은 인식과 시스템을 말한다. 많은 트래픽과 페이지뷰가 그대로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인데, 이 조건만 충족하면 뉴스가 뉴스로서 갖추어야 할 다른 조건들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저널리즘의 행태는 신문이 발생한 초창기부터 있어왔던 행태라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조회수에 목매는 미국 언론들의 실상은 우리나라의 싸이월드 열풍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했다. 한때 방문자수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사건들이 발생해 사회적 비난을 일으킨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의 좋아요 구걸, 유튜브의 구독자 구걸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런 성질의 플랫폼 위에서 자리잡은 온라인 미디어가 다른 노선을 달리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바람인가보다.
한마디로 유사언론이 주류언론, 정통언론과 분별되지 않는 시대다. 날조와 왜곡, 훔치기, 속임 등이 너나 할 것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으로 수익을 얻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태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다 그렇게 하니까 문제될 것 없다는 식으로.
페이지뷰 저널리즘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 중에는 뉴스 소비자들의 무비판적 수용의 자세도 들 수 있겠다. 이것이 정말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금만 복잡하고 사고를 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외면해버린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건에만 관심을 보이고 반응을 하다 보니 언론들도 이에 맞춰 자신들의 뉴스를 상품화하고 서슴없이 조작과 날조를 일삼는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 콘텐츠 경제가 이익 중심으로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과거에도 물론 왜곡과 날조, 속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가상의 이야기, 상황이 여론 몰이를 했다. 그러나 그때는 사람들의 생각에만 일으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기술로 그 세계가 구현되면서 현실적인 파괴력이 더 강해진 것에 심각성이 있다. 사람들의 시간과 정신을 흡입하는 온라인 미디어가 더욱 가공할 괴물로 성장해버린 것이다.
자신이 그 생태계의 혜택을 누려오다가 위험성과 심각성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자각에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생각이 얄밉기는 하지만, 이렇게 저널리즘이 마케팅과 결합하여 낳는 해악을 정면에서 다루고 폭로해준 것은 어찌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이런 책을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소음과 신호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과 판단력을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 됨으로써 이 세상 속 무의미한 시끄러움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