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소크라테스의 존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세계 철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그리스 아테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며,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고, 최소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으로 그 존재를 희미하게라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킨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나 그의 일화 등을 여러 곳에서 다루고 전해듣기는 했어도 정작 그의 기록들을 심도 있게 읽고 대화를 나눠본 경우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도 그런 경우에 속해 있던 터라 이제야 그의 흔적들을 유심히 읽어볼 수 있게 되어 부끄러우면서도 즐거웠다.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그를 질투하는 자들에 의해 불경죄로 고발당하고 결국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 불경죄의 내용이 넌센스 그 자체다. 그가 신을 부정하고 잘못된 가르침으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경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소크라테스를 시기하는 자들의 모함과, 그들이 고발한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여론에 떠밀려 동조한 대중들의 무지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평생에 한 일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사람들을 좀 더 훌륭하고 선량하게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산 사람이었다. 돈과 권력, 지위에서 자유로웠고, 그 때문에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부족한 가장이었으나, 철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따뜻함으로 무장된 그의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고 따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다.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진리 탐구는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한다. 즉 생각하고 의심하며, 의문을 가지고 고민하며 연구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자산들을 독점하지 않고 나누었는데, 그것은 바로 ‘산파술’로 알려진 소크라테스의 독특한 대화 방식을 통해서였다. 대화는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된 행위이다. 이 상호작용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뛰어난 철학적 통찰을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철저한 이성과 논리 말고도 소크라테스 철학에는 큰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다. 책 곳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하는 일이 신에게서 받은 사명이며 축복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의 근저에는 모든 것이 신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의 모함과 비난, 부당한 판결 가운데서도 초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죽음조차도 영원한 안식 혹은 먼저 간 위대한 현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신 의식은 그리스 신화적 색채보다는 오히려 기독교 사상적인 유일신을 밑바탕에 둔 느낌마저 든다. 이런 그의 태도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신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는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하면 대부분 무지에 대한 자아의 인식과 그 반응에 대해서만 떠올리기 마련인데, 알고 보니 그만큼 신앙적인 역사적 위인도 없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그의 죽음은 그가 자초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에게 진실만을 말했기 때문이다. 신적 사명감을 가지고 진실만을 위해 뛰었던 그의 열정이 사람들의 화를 돋군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거기에 힘을 보태준 것은 깊이 생각하고 사실 확인하기를 거부한 대중의 압력이었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분명히 했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 특유의 대화법을 통해 그들의 무지를 여지없이 입증해주었던 소크라테스.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서 지혜롭거나 쓸모있거나 대단한 사람인 척 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했고 비판했던 소크라테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진리와 기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의 올곧은 모습은 칭송할 만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한계를 절감케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소크라테스가 살아돌아와 그때와 동일하게 행동한다면, 과연 누가 즐거워할까? 과거의 인물이기 때문에 영혼의 스승으로 삼거나 떠받들거나 위인으로 여기거나 인문학 상품으로 부활한 것이지, 바로 우리 곁에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진실을, 진리를 조용하지만 분명히 외치고 있다면,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불편한 존재로 우리를 압박할 것이고 결국 우리는 또다시 그를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