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도 여러 번 언급되지만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몇몇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일단 러시아도 문명국이기는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들에 의해 야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야생의 거친 기운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곳 같은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광활한 대지와 순탄치만은 않았던 유구한 역사,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가와 음악가들이 배출된 곳이라는 점 등이 복잡하게 얽혀 다른 곳과는 특별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이란 편견을 깨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러시아 여행을 통해 많은 편견이 깨지게 되었고, 러시아에 대한 긍정적이고 친절한 이미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을 밝히고 있다. 저자가 여행한 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처럼 많이 알려진 곳과 최근 방송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이르쿠츠크, 그리고 처음 들어본 예카테린부르크 같은 도시 등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도 일부 담고 있으며, 레닌은 책 여러 곳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이야기가 후반부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후기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조명이 눈에 띈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의 사회주의 시스템 안에서 서구 문화는 거의 차단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후기 소비에트 사회에서는 체제를 지나치게 거스르는 것만 아니라면 다양한 문화가 받아들여져 흡수되어 있었고, 독특한 러시아만의 문화로 융화되었거나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대표적인 것이 일찍부터 소비에트의 하위 문화로 정착된 록 음악 같은 것이다. 이런 내용을 읽다가 최근 ‘레토’라는 영화로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는 ‘빅토르 최’가 생각났다. 아무튼 우리가 생각하는 철의 장막 같은 이미지는 후기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올바른 지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책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매우 개방적이고 친절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진 촬영을 부탁하면 대부분 흔쾌히 허락한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 먼저 촬영을 제안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사진 촬영에 대한 이야기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러시아인들이 자세를 낮추거나 무릎 꿇는 행동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었다. 저자가 자세를 낮추어 특정한 구도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사진 찍기를 허락한 러시아 사람도 같이 자세를 낮추더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세를 낮추거나 무릎을 끓는 것을 부당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저자는 이것을 인식한 후에는, 항상 선 자세로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추고 찍었다고 한다.
버스킹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이미 19세기 러시아에서 버스킹은 대중화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문화라기보다는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버스킹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버스킹의 모습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목적은 사실상 구걸이었다. 지금도 돈통을 앞에 두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으니, 구걸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워도 그 맥락을 이어간다고 볼 수 있겠다.

건물 구조에 있어 러시아이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개성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상점 같은 곳의 입구가 건물 안쪽으로 나 있다는 점이다. 워낙 추운 곳이다 보니 건물을 가운데 공간을 중심으로 둘러친 것처럼 지어놓고 바깥쪽이 아닌 안쪽으로 입구를 내어 추위를 덜하게 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나마 입구도 닫아 놓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그냥 밖에서 보면 열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 항상 확인을 했다고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미디어에 노출된 것과는 다른 러시아에 대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약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을지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점, 또 일반적인 서양 사람들보다 좀 더 친근하고 한국적(?)인 느낌을 러시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점, 지구온난화로 예전의 눈 덮인 설원을 무조건 기대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추위가 러시아의 대표적인 특징이라는 점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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