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왕과 같은 리더, 혹은 그 아래 수많은 이름 없는 민중들의 모습 속에서 내용을 채운다. 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시대를 뛰어넘는 비범한 인물들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거나 새로운 가치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강력한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조선시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관습과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파란을 일으키거나 변화의 물꼬를 튼 인물들이, 신간 『조선 천재 열전』에 담겨 있다.
김시습은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탁월한 문학적 능력만큼이나 당대 세상을 읽어내는 경제적 혜안도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동년배에게 ‘그만 좀 해먹어라’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정치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도 늘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의 시는 많이 남아 있지만 학문적 유산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을 주는 천재로 기억된다.
율곡 이이의 천재성은 3살 때부터 일찌감치 드러났다. 5살 때 아픈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에서 근본부터 착한 심성임을 보여준다. 이이에게서 가장 부러운 능력은 독서력이다. 한 번에 여러 줄을 읽으며 뜻을 깨닫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독서가 가능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사람을 대하면서 동시에 스마트폰을 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명성에 대한 욕심이 없었고 학문에 전심전력을 기울인 그 모습이 훗날 율곡의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도 그런 루트가 가능할까? 율곡 이력의 가장 큰 특징은 불가에 귀의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 논어를 읽다 깨달음을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왔고, 퇴계를 만나 성리학을 조선의 상황에 맞춰 재해석한 업적이 오늘까지 빛을 발한다. 10만 양병설을 주창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의 정치 시스템은 최악의 불운이라 할 만하다. 율곡이 본 정치의 본질은 지도자가 백성을 자녀와 같이 사랑하는 것에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등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6세기 말 조선이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간 것이 안타깝다. 그의 학문은 늘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 사회의 유교 마인드는 그와는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정철은 조선 중기의 탁월한 문인이자 실패한 정치가라는 이력을 남겼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어린 시절 궁궐에 자연스럽게 출입할 수 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을사사화로 집안이 망하고 아버지를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한다. 그가 사법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을 때 임금이 관대한 처분을 바랐으나 단호히 거절한 사건이 있었다. 한마디로 관용과 포용력이 없던 사람이었다. 이로 인해 좌천까지 되었다는데, 어찌 권력에 대한 편집증을 가진 사람이라는 평가가 남게 되었을까? 그의 흑백이 분명한 성격은 당대 동서로 갈린 정치판에서 조용히 살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기가 속한 파에서 최선을 다해 투쟁했다.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반대파의 공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300년 당쟁 시대를 연 장본인으로서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산해라는 인물은 처음 알게 되었다. 성호 이익 선생이 김시습과 함께 인정한 천재라고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 반성하고 남을 원망하지 않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천부적인 문학적 재능으로 인해 착실하게 글을 읽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아마 기존의 문학적 관습에 포위되지 않았단 말로 들린다. 그는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주기를 좋아했으며, 당대 가치관에 반하는 여성들의 일도 직접 스스럼없이 할 만큼 개방적이었다. 함께 천재로 거론되던 김시습처럼, 이산해도 정치적으로 큰 빛을 못본 것이 평행이론처럼 다가온다.
허난설헌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조건으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고, 스물일곱 단명으로 안타까움을 주는 인물이다.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 중에 중국의 문장을 표절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한 번 더 깊이 살펴볼 만한 내용으로 보인다.
18세기의 인물은 신경준은 그 업적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천재 지리학자다. 훗날 정인보에 의해 세상에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지리학 전통의 체계를 세운 빛나는 존재였다. 지리학 하면 김정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매우 훌륭한 실천적 학문을 일궜던 인물을 알게 되어 유익했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와 함께 워낙 미디어를 통해 많이 노출된 인물이라 특별히 눈길을 끌지는 않았다. 다만 얼마 전 시청했던 영화 ‘자산어보’와 연결되어 시대를 앞선 정씨 형제들의 사상이 너무 허무하게 조선 사회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후대의 유산으로만 남게 되었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추사 김정희는 누구보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었고, 세속의 잣대에 신경쓰지 않았으며, 넓은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갔다 전해진다. 그의 글씨체인 ‘추사체’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학문의 핵심은 실천에 있었고, 실용을 중시했다. 뿐만 아니라 역사학에 공헌한 바도 크다.
황현은 저자가 꼽는 조선 말기의 마지막 천재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누구보다도 개인의 운명과 나라의 운명이 함께 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시인이자, 역사가,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황희 정승의 후손이며, 어린 때부터 한 번 본 글은 곧잘 터득했다고 한다. 전통 유학을 공부한 선비였고 위정척사파와 생각을 같이 했지만 갑오개혁 이후 생각을 바꾸어 서구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시대의 한계로 인해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이 책의 부재가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인데, 읽어보면 부재에 걸맞은 인물은 율곡 이이와 신경준, 정약용, 황현 정도인 것 같다. 김시습이나 정철, 이산해, 허난설헌, 김정희는 시대를 대표하거나 앞서간 천재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는지까지는 불분명하다.
책에 소개된 인물들이 품었던 소망이나 꿈, 계획들이 그대로 실현되었더라면 조선은 다른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재는 대체로 시대와 불화한다. 그 시대가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방해라고 볼 수 도 있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의 기록이 남아 후대 사람들인 우리가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인데,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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