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어렵다고 느끼고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모양의 낯섦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갈 때 교과서에서 표현되는 공식이나 문자가 초등학교와는 전혀 다른 데서 오는 당혹감이 첫 번째 장벽으로 작용하곤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원소까지는 어찌어찌 넘어가는데 뒤이어 나오는 함수나 행렬 같은 것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 암담함은 미리 준비했거나 수리적 감각이 영 없는 학생들에게는 의욕을 떨어뜨리기 딱 좋은 모양새였다. 왜 이게 이래야 하는지 아예 감도 못 잡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낯설고 암담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게 수학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인간이 만들고 계승해온 학문이자 도구가 수학이다. 정말 수포자는 영원히 수포자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무언가 돌파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답은 간단하다. 수학에 대한 교육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도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는 것이 수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은 처음 수학을 접할 때 본질적이고 의미적인 차원에서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그저 조금 이해가 늦을 뿐인 아이들을 걸러내고 떨어뜨리기 위한 장치로 활용하는 듯하다. 이것이 공교육 수학의 폐해의 핵심이다.
수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외국어라고 할 수 있다. 수식을 통해 어떤 현상이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적 특성이 있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어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수학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수학은 수식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영어의 어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수학에서 서술형 문제에 대한 언급이 많았는데, 수식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은 수학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언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학은 단순히 복잡한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문제, 논리의 문제인 것이다. 수학이 논리력과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하면서도 그런 관점에서 수학을 접해보지 않으니 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수학의 언어적 특성을 통해, 수학은 생각하는 방법, 즉 사고방식의 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다양한 수학 공식이나 개념들이 일상의 다양한 문제 상황, 또는 사건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형태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눈앞의 다양한 상황들을 수학적 형태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소제곱법’이 공자의 ‘중용의 도’와 통하며. ‘확률’ 개념을 통해 인간이 가진 편향적 세계관의 비효율성을 진단하고, ‘함수’ 개념을 통해 데이터의 경향성에서 나올 수 있는 해석과 예측 중 예측의 가치가 왜 더 높을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일반적인 성과나 주식시장에서의 승률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동일한 원리의 문제임을 명쾌하게 알려준다.
또 ‘연립 방정식’이 “다양한 각도에서 특정 사물의 내적 본질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것과 그 해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이 어울리며 거기에서 도출된 공통된 의견에 다름 아니라는 저자의 설명은 수학이 우리의 삶과 그 안의 문제들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된 학문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연립 방정식이 다양성의 가치를 수학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이었다니, 처음 들어본 설명이지만 무척 인상적이었고 수학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합성곱’이라는 수학적 개념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 개념과 연결되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외부 입력에 대한 시스템의 반응’이라는 기본적인 수학 개념은 단일한 입력에 대한 반응과 연속된 입력에 대한 반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때 연속된 입력이 간격을 두지 않고 순차적으로 이어질 때 하나의 큰 흐름으로 시스템이 인식한다는 설명이 있다. 여기서 단일한 입력은 큰 행복(대확행)으로, 연속된 입력은 이어지는 소확행으로 바꿔 이해해 보면, 탁월하지만 간격을 둔 성취보다, 소소하지만 연달이 이어지는 작은 행복들이 전체 흐름에서 보면 더 큰 행복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에서는 수학과 문학적 감수성이 전혀 별개의 영역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학적 사고방식은 복잡한 세상을 보이는 것보다는 조금 더 단순화, 구조화하여 이해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을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낼 수 있는 지혜일 수도 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수학을 이런 식으로 먼저 접한다면, 그 누가 수학을 어렵고 따분하고, 혹은 두렵고 암담하다고 할 수 있을까? 수학이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이며 실용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그 진가를 알려주는, 정말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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