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언제나 미친 탐욕과 이기심 속에 있다가 폭발하기 직전인 광기의 정점에서 잠시 퍼뜩 정신이 돌아와 최대한 정상적인 상태의 발전을 도모하며 점점 문명을 축적해온 것이 인류가 반복해온 역사는 아니었는지.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는 누구나 차별 없이 제공받아야 할 공공의 재화와 서비스 부분까지 민영화․ 사유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세력들로 인해 인류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실질적인 자료와 함께 고발하고 있는 책이다. 교통, 의료, 수자원, 에너지, 교육, 연금, 통신은 물론 심지어 안보의 영역까지 오로지 경제적 가치의 잣대의 거래대상으로 격하시키려 하는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전 세계의 공공부문의 민영화․ 자유화 바람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그저 한낱 물건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십 명이 죽고 나서야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시 국영으로 돌린 영국 철도의 사례나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대항해 거의 전쟁에 가까운 시위로 조금이나마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민영화 문제 사례 등 책을 읽는 도중에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서민들의 생활을 볼모로 이윤 추구를 위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의 생명도, 지구의 환경도 모두 경제적 이윤추구를 위한 거래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이 떠올랐다. 모든 물질․ 비물질적인 자원이 한계가 있는 법인데 어째서 인간은 끊임없이 경제성장에 목말라하고 탐욕을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 욕구를 조절하거나 멈춘다면 인류는 당장 멸망하고 말 것인가? 왜 인류는 경제라는 문제에 있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인가? 비상식적인 이윤추구로 인해 결국 그 피해가 자신들에게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왜 그들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구가 회복불구의 상태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에 나오는 거대한 나비 모양의 우주 범선처럼 탈출을 위한 우주선이라도 어디 만들어 두고 이런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엉뚱한 상상마저 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시장자유화 및 공공부문의 민영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사실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악랄한 행위를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른다 해도 인류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내 왔다는 것을. 그걸 알기 때문에 그들은 대담하게도 멀쩡한 사람도 황폐하게 만드는, 공적인 영역까지 사유화하려는 침탈을 일삼는 것이다.
과거와 지금이 다른 점은 하나다. 우리는 이제 지난날을 돌아보며 과오를 범하지 않고 최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거대자본이 미디어를 통제하고 정치인들이 대국민 사기극을 계속하고 있다고 해도 오늘날 사람들은 이전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넓고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최악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계속 살아갈 것이다. 둘 중 하나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조금이라도 정상적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미친 채로 살아가든지 둘 중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