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시 눈을 감는다. 나의 몸이 서서히 분해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물과 흙을 비롯한 다양한 물질로 분해된 나는 신기하게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물과 흙의 단계를 지나 분자 단위로, 이어서 더욱 작은 원자 단위로 쪼개져 산산이 흩어진다. 가만히 살펴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다 그런 식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모든 만물은 그렇게 가장 작은 단위에서 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만물의 근원을 하나님, 즉 신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리언 레더먼의 ‘신의 입자’를 읽고 있으면 마치 그 신이 어떤 식으로 세상을 창조했는지 그 과정을 파고들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이 책은 물질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 내부의 원자핵과 그 내부를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이 입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도록 작용하는 매개입자의 존재까지 - 우주 만물을 이루는 최소단위의 존재와 그 작동원리를 파헤쳐가는 인류의 2,500년의 여정을 과학자들의 주요 업적을 통해 따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물리학 중에서도 입자물리학, 그중에서도 실험입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주로 다뤄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중과학 교양서의 주된 저자가 이론 중심의 과학자들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또 다른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로부터 시작된,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은 물이었다. 이후에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들의 만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데모크리토스에 이르러 ‘원자’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쪼개고 쪼개어 -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의 입자, 이것이 ‘원자(아토모스)’의 개념이다.
이 책의 최종 목적지이자 주인공은 ‘힉스입자’다. 이 ‘힉스입자’가 데모크리토스가 정의한 아토모스의 진정한 주인공인지는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책에 담겨 있는 기나긴 물리학의 역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현상과 경험을 상상과 추론의 영역에서만 다룰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기술이 발달하고 실험도구와 실험방법이 발전하면서 물리학은 이론과 실험이라는 환상의 이중주를 통해 과학적 진리를 축적해왔다. 뉴턴의 고전역학을 기반으로 한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고전물리학의 이론이 통하지 않는 초미시세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확립된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한 확률론적 세계관으로의 확대발전과정은 이 아름다운 이중주의 좋은 예다. ‘힉스입자’는 현재시점에서 그 환상곡의 집합체이자 정점이다. 지금보다 더욱 새롭고 기발하고 창의적인 이론이 등장하고, 더 높은 단계와 규모에서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면 아토모스의 주인공은 바뀌거나, 아니면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
반대로 환원주의의 긴 여정이 조만간 마무리되어 더 이상 근원에 대한 탐구가 불필요하게 되면 인류는 또 어떤 숙제를 안게 될까? 이 시점에서 늘 생각하게 되는 게 있다. 인류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의 문제에 집착하고 발전해 왔다‘는 것. 사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입자물리학의 대서사시는 ’어떻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가는 과정이었지 ’왜‘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은 아닌 것이다.
최종적으로 만물을 이루는 최소한의 기본입자가 무엇이고 그 작동원리가 명확하게 밝혀진다 해도 이것이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모든 의문의 최종 목적지는 철학이나 신학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의문을 불필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현대 과학의 눈부신 성과라는 나무가 맺은 열매를 따먹고 배불리는 것만이 의미가 있겠지만.
보통의 독자들에게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독자가 책을 끝까지 읽어내기를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바람이 책 곳곳에 유머와 적절한 비유로 녹아 있다. 때문에 나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독자들에게 저자는 멋진 인증을 선사해준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학에 무지한 일반대중’에서 제외된다. 내 책을 구입해준 고객이어서가 아니라,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을 9장까지 참고 읽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독자들은 나의 친구이자 동료이며, 칙령에 따라 완전하게 검증된 ‘과학교양인’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최대의 수확은 ‘과학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체계적으로 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의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자격 이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가고 싶다.
이 책의 연결고리: 최근에 읽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에서 "궁극의 물리학은 신학과 맞닿아 있다"는 문구와 관련 내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런 와중에 이 '신의 입자'가 눈에 띄었는데,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때의 강렬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아쉬운 점 : 오탈자가 너무 많이 발견되었다. 독서를 하면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인쇄 실수를 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찾은 것만 대략 16군데가 넘는다. 인쇄 전에 좀 더 꼼꼼히 확인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