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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도서]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송해나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신여성 리뷰어 1기 모임으로 사월날씨 작가의 「결혼 고발」 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면서, 이 책과 꼭 묶어 소개해야겠다. 다짐했던 게 1월 초였는데, 제대로 써보겠다는 핑계로 미루다 보니 벌써 1월 말이 됐다. 에세이 「결혼 고발」과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는 비혼을 선언하는 과정에서 내 삶에서 배제된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혼과 임신. 나 역시 이를 선택의 문제라 말하고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내가 결혼과 임신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를 선택했을 때, 따라오는 것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가부장 제도의 그늘, 임신했을 때 내 몸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면 사방에서 날아오는 혐오와 사회 제도의 한계가 선택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선택은 선택이라 축소시켜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그럼에도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제도적인 문제의 해결책에서 눈을 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두 가지 질문의 답을 잘 알고 있다. 맞다. 나는 지금까지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와 관련된 제도적인 문제에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불공평하다는 걸 알지만, 실질적으로 어떤 차별이 자행되고 있는지 그 속내를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고,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 이들의 어려움 앞에서 본질적인 해결책은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인 양 떠들어댔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는 선택은 결국 여성의 활동을 제약하는 행위이다. 마치 우리가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짧은 치마를 입어서는 안되고, 밤늦게 돌아다녀서는 안된다는 말과 똑같지는 않지만, 어딘가 닮아있는 구석이 있다.


「결혼 고발」의 사월날씨 작가와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의 송해나 작가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당한 일들을 가감 없이 풀어낸다. 특히 제도의 비정상적인 측면과 사람들의 무관심을 지적한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미 출산을 경험한 엄마와 나 사이의 괴리와 이해였는데, 이해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분명히 말한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모두가 출근하고 혼자 남은 양친의 댁에서 생각했다. 이게 우리 엄마가 살아온 삶이겠구나. 시가에서 미움받을까 걱정하고, 사사건건 눈치 보고, 힘든 일을 그저 감내해야 했던 엄마에게 감정을 이입해 혼자 엄마를 동정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p.283


나 역시 이와 같은 경험을 자주 접하는데, 이는 동년배보다는 이미 이를 경험해 고난과 역경을 겪은 중장년층과의 대화에서 벌어진다. 지난가을부터 시강을 시작한 미술 수업은 일반 화실이 아닌, 도서관과 문화센터라는 특성상 이미 결혼과 임신, 육아라는 과정을 경험한 중장년층의 여성분들의 교류의 장이 되었다. 친척들과 달리 그분들은 나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말리는 수십만 개의 에피소드들이 잡담의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내 나이를 밝혔을 때, 지금까지 그들이 겪은 고난과 역경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 포장되며, 그러니 나 역시 좋은 짝을 만나 그 고난과 역경을 경험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사회에서는 출산을 두려워하면 그 모성을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고통을 견디며 출산을 해내면 모성의 힘이라며 찬사를 보낸다. 이 두 가지 모두 모성 혐오라 생각한다. 모성이란 이런 것들로 타인이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주변에선 그렇게 엄마가 되는 거라고 말한다. 꼭 그 고통을 모두 내 몸으로 겪어야만 엄마가 되는 걸까. 고통이 '엄마 됨'의 필수조건이어야만 하는 걸까. 이런저런 해답 없는 질문들을 던져보지만, 모성의 고통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사회일수록 여성이 인간으로 대접받기 힘들다는 것만큼은 잘 알겠다.

사람들은 엄마라면 그저 모두 그렇게 산다고 말한다. 너 역시 그렇게 컸고, 아기를 맞이하는 건 원래 그런 거라고 말이다. 엄마는 다 그런 거란 말, 모두 다 그렇게 살았고 너도 그렇게 살 거란 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 이 말은 아기와 양육자 모두에게 너무 폭력적이다.

p.219 / p.246 / p.301



그리고 나는 물었다. 작가가 그렇게 엄마가 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꼭 그 고통을 모두 내 몸으로 겪어야만 엄마가 되는 걸까.라는 질문처럼. 그렇다면 그 고난과 역경을 경험하지 않고,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리고 곧 이 질문은 진지한 화두가 아닌 농담처럼 여겨지며 흘러갔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그 질문이 비판 없이 수용되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적어도 그 후에는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말이 등장할 때마다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웃거나, 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젓는 분이 생겼으니까.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인내하지 않고 불만을 토해내는 이는 유별나고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은 없다라고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그런 말 자체를 할 수 없도록 자신이 원래 그렇다,는 말을 해오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본인이 원해서 아기를 가졌다가, 임신 중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힘들다고 임신을 중단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여성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 하나 동정이라도 할까.

p.58-59


나와는 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슈들에 눈을 돌리며, 이 또한 편의주의의 탈을 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으려고 하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해서 있었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책들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결혼과 임신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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