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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도서]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 동계 공연으로 연극 <해가 지는 곳으로>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겨울부터 공연 쪽에는 발을 빼고 있는지라 소식이 늦어 마음을 뒤로했는데, 보러 간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읽을수록 찰랑이는 갈증을 견딜 수가 없게 됐다. 며칠은 뒤늦은 후회로 왜 이렇게 어이없이 놓쳤는지, 자책하다 이내 곧 공연에 대한 미련을 독서에 대한 열망을 바꿨다. 찾아보니 얼마 전,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로 마음에 들어온 최진영 작가의 작품이었다. 최진영 작가의 작품인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이제는 꺼져버린 열망을 되돌릴 수 있었을까, 하루 종일 양도 글을 기다리며, 열악한 작업 환경에도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독서에 대한 열망으로 등가교환되지 않은 미련이 다시 끔 툭툭 튀어나왔지만, 그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그 미련은 마치 솜사탕처럼 활자에 녹아 사라졌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지 않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신과 불신이 쌓이는 상황이라 작가가 견고하게 쌓아올린 세계 위에 어쩌면,이라는 가정이 자꾸 덧씌워졌다.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말 빠른 전파력을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사람이 밟혀 죽어나가는 개미와 같이 하찮아진다면,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생존을 필요한 능력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운전면허, 무술, 다양한 외국어, 과학 상식 등. 끝도 없이 늘어나는 능력 목록을 되짚어 보니, 멸망 속에 생존하기 전에, 내게 주어진 생이 다해도 다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생존은 온전히 운에 맡겨진 것이며, 그 운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결국 사람이길 포기하지 않고, 현재를 잘 꾸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의 화자들 역시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던 재앙에 그들은 살기 위해 도덕의 선을 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재앙을 기회로 여기는 이들이 되진 않는다.


재앙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 재앙에도 굶지 않고 뛰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세계는 저승보다 먼 곳에 있을 것이다.

도리, 18p


불행을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도리, 55p


재앙을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알고 있었다. 먼 미래의 멸망을 겪지 않아도, 선의 옆에 목숨 장사를 하는 이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멸망이 찾아온다면 선의를 베풀었던 이들의 삶이 가장 먼저 무너지리라.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최고의 것으로 친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며, 끊임없이 불의를 타협한다. 하지만 선의가 무너진, 사람이 아닌 자로 살아가는 삶의 공포는 정말 죽음의 공포보다 작을까.

그런 비참한 질문 속에서 도리와 지나는 만난다. 저보다 더 어린 미소를 지켜야 하는 도리와 아빠라는 어른의 보호 아래 있는 지나. 무너지는 세계 속에선 현실을 견고하게 감싸고 있던 편견의 벽이 부서진다. 생존이 유일한 목표가 되는 상황 속에서 생존과 상관없는 본능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동시에 빠르게 배제되지만, 절망 속에서 또 다른 믿음과 인연을 쌓은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지나처럼 웃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입을 맞췄다. 차갑고 따뜻했다. 거칠고 부드러웠다. 추위도 허기도 불행도 재앙도 모두 우리의 키스에 놀라 자취를 감춰 버렸다.

도리, 58p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감정이 사람을 살게 만들고, 사랑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는 지금까지의 말들이 얼마나 거짓에 가까운지를 드러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린 진실 앞에서 지나는 제 사랑을 짓밟는 이들의 가혹함을 배우고, 학습된 가학과 변명 속에서 부끄러움과 마주한다.


나는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 가족이니까?

가족을 모욕하지 마.

내가 모욕한 게 아니야. 스스로 그랬어.

지나, 82p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를 만나고 싶었다.

지나, 113p


어쩌면 부끄러움이라는 건, 자신의 존엄을 짓밟힐 때보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존엄을 짓밟을 때 느끼는 그 감정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현실이 그러니까,라는 말도 가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를 찾는 건,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자꾸 나를 좀 먹는다.


그리고 2월 28일, 우리는 또다시 묻는다. 당신은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냐고. 프랑스 영화제 최대 축제로 손꼽히는 세자르 영화상 시상식에서 로만 폴라스키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했다. 로만 폴란스키는 이미 1977년 미국 LA에서 13세 미성년자에게 약물을 먹인 뒤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징역형을 선고받기 전 1978년 프랑스로 도주해 40년이 넘도록 미국 법망의 감시를 피해 다니는 도망자 신세로, 미국에서는 여전히 지명수배된 상태다. 그 외에도 10대 시절 그에게 성폭행 당했다 용기 있는 폭로가 이어졌지만, 그중에는 공소시효 만료로 제대로 된 처벌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태이다. 2019년 영화감독 크리토프 뤼지아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 및 고소했던 배우 아델 에넬은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상을 수상하자 수치다,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고, 아델 에넬이 참여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팀 모두 그의 뒤를 따라 자리를 떴다. 어제 권위자들이 한 선택은 세자르는 더 이상 권위 있는 시상식이 아님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길이었다.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로서의 그들의 용기를 지지한다. 예술에 발을 담그고, 이를 소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 내가 사랑하는 예술이 부끄러움과 나란히 서길 바란다. 선의보다 불의가 가까운 세상에서 나 역시 배우 아델 에넬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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