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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서]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내가 그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최근은 뮤지컬 까라마조프를 보러 가기 전으로 기억하는데, 초반만 살짝 들췄다 덮었으니 읽어다고 하기에는 양심이 찔린다. 내 최초의 기억은 학교 도서실이다. 그가 쓴 책을 호기롭게 집어 들었던 교복 입은 학생은 세 글자 이름에만 익숙해졌던 머리로 등장인물을 쫓아가느라 진이 빠졌고, 그렇게 애써 책을 읽었는데 내용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시도가 이어졌지만,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누군가 그의 책을 들이민다면, "저는 그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하는 게 가능했고, 이 책을 읽고 있던 방금 전까지 작업실 멤버인 W가 이 책에 관심을 보이자, 생각보다 재밌긴 한데, 제가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지 않아서 망설였다 말하는 것 역시 가능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읽고 싶은 독서 목록 사이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끼어 넣으며, 꿈틀거렸다. 필자는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에세이를 통해 그동안 긴 이름에 지쳤거나 하는 이유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었던 이들에게, 근데 말이죠, 이 대목이, 이 인물이, 하면서 자신의 도스토옙스키 덕질에 독자를 적극 영업한다. 게다가 흥미는 가지만, 그의 두꺼운 대표작을 견디길 겁내하는 이들을 위해 친절하게 이 정도의 짧은 단편은 괜찮지 않나요, 하며 들이미니 어니 한 번,이라고 마음이 동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이 에세이가 술술 읽히는 데는 필자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 그리고 작품을 적극적으로 영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그림이 곁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에세이 중간중간 필자는 낯선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을 펜으로 쓱쓱 그린 듯한 이미지로 구현해낸다. 그렇게 필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인물들은 상상력이 부족한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물론 익살스러운 일러스트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단편 「백치」의 등장인물인 나스따시야같은 인물이 되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전 남친과의 이별에 쿨해지려고 굴지만, 결국 연락을 기다리고 마는 필자의 모습을 나스따시야가 화들짝 놀라며 지켜보고 있다거나,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에서 제대로 다뤄주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브릴라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나는 당신이 가장 우아한 사람인 걸 알고 있다고 말을 거는 필자의 모습은, 책을 읽으며 작게 낙서를 하거나 혹은 속으로 한 마디씩 던지는 흔한 독자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구현해내고 있다.


"그러면 무미건조하지 않으세요?"

학연, 지연, 혈연은 죄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말은 바로, 책을 통해 만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대사였는데, 최근 지나치게 자신을 재단하며 지쳐 있는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렇기에 자꾸만 작아지고, 동시에 그럼에도 내가 만든 윤리의 틀 안에 갇혀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는 나날들에 대한 말. 나에 대한 재단은 사실 타인에 대한 재단으로 이뤄지고, 종종 우리가 위선이라 부르는 예외 역시 그 대상이 됐다.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에 블로그에 쓴 글 중에 <예외, 그리고>라는 짧은 글에 담긴 최근 좋아하게 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헤테로 커플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철저하게 나를 재단하고 윤리적인 사람이 되면 좋겠지만, 가끔은 감정에 이끌려 하나 정도의 예외를 두는 게 중요했구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인간이 타인과의 작은 공통점만으로도 편향되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 언제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연, 지연, 혈연은 죄가 없다


모든 에세이가 주옥같았지만, 개인적으로 최고를 꼽으라면 <가족끼리 무슨 여행입니까>였다. 해당 편에 쓰인 솔직하면서도 가차없는 언어가 좋았다.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나 규범을 해체하고자 하는 이들의 글은 많이 읽었지만, 그들에 글에는 항상 선이 있었기에, 종종 그래도, 그럼에도,라는 딜레마를 직면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거침없다. 이미 에세이를 여는 첫 문장이 "나는 호래자식이다.", 누구든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면 뒤에 어떤 글이 펼쳐져도 이렇게까지 호래자식이라고?,라며 놀라지 않게 된다. 엄청난 기술이다,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리고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목을 배신하지 않는다. 물론 그 말에 상처받는 다른 가족 구성원의 연약한 마음을 약간 배려하긴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호래자식이다"라고 선언한 이상,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으리 본다. 오히려 그 약간의 배려를 보며, 이 정도면 그래도 호래자식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가족 여행이라는 걸 가 본 적이 없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효도를 핑계 삼은 가족 여행 권유(라고 쓰고 강요라고 읽는다. 어떤 의도로 거절하든 속뜻을 들키는 순간 호래자식이 되기 때문이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아, 세상에, 맞아, 까지는 아닌 아, 세상에, 나도 저런 권유를 받으면 이 에세이를 권해야지, 정도의 공감이었지만, 문득 가족 여행을 앞두고 길게 속내를 털어놨던 C 언니의 걱정과 고민의 말들이 떠올랐다. 오래전 일이다 보니 그 걱정과 고민이 이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변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같은 걱정과 고민이 잔류해있다면 언니에게 이 에세이를 권하고 싶다.


공간이란 물리적인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 정신적으로도 서로가 독립적 개체라는 사실, 성향도 가치관도 성격도 판이한 한 개인이란 사실을 받아들일 때 누구 하나 상처 입거나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고 서로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가족끼리 무슨 여행입니까


그 외에도 "물론이다. 창작이나 연구 활동 역시 연애처럼 자기 자신을 쏟아붓는 '작업'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읽으면서 지금은 일이 중요하니 연애는 내 소설 속 인물들이나 실컷 해라,라는 나를 위로한다거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근력 강화를 위한 요가를 하기도 한다.(멋있게 나이든다는 것)"를 읽으며 운동하기 싫다는 마음과 싸우기 위해 거금을 필라테스 수업 강의료로 소비하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떠올리며, 꽤 재밌게 책장을 넘겼다.

필자의 영업에 손을 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필자처럼 내 인생에도 비슷하거나 또 다른 형태의 울림을 줄지, 이 책을 읽기 전처럼 기겁하며 또 책장을 덮을지 모를 일이지만, 영리하게 제가 좋아하는 것을 영업하며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이 에세이는 재밌고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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