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대에 살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정말 돈 있는 나라나 혹은 기업이 한 도시를 구매한다면? 경제력이 없는 나라는 그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기왕이면 카카오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안일한 생각이었다(아니면 백종원시 라든지...ㅎㅎ). 이런 생각은 당연히 상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장난기 가득한 헛 된 망상이지만, <사하맨션> 속의 도시 '타운'은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울한 도시 그 자체였다.
파산한 도시, '타운'을 인수한 기업은 주민권을 가진 L과 2년 체류권을 가진 L2로 거주민들을 분류했다. 원래 그 도시에 살고있던 '원주민'들도 모두 L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경제력 혹은 '타운'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들 만이 L이 될 수 있었다. L들은 병원비도 내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등, 1등 시민으로서의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으나 L2는 3D업종의 일을 하며 2년간 체류권으로 겨우 살아간다. 대체로 타운의 원주민들이 이 L2가 되었는데, 이들은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날 수 없어 2년이 지나면 모욕적인 심사를 견디며 체류권을 연장한다. 그리고 L도, L2도 아닌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하'라 불리는 '사하맨션' 거주자들인데, 사하맨션에 살지 않아도 체류권이 없는 그 밖의 사람들을 '사하'라 부른다.
사하맨션은 일종의 버려진 공간이다. 타운에서도 맨션 사람들의 거주를 막지도, 그렇다고 주민으로서 관리하지도 않는다. 다양한 이유로 거주권을 박탈 당한 사람들이나 도피처로 맨션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사하맨션의 주민들이 되었다. '진경'은 <사하맨션>의 스토리를 전반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남동생 도경과 함께 본국에서 도망쳐 온 진경은 사하맨션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우미와 사라, 꽃님이 할머니와 관리실 영감... 그리고 과거의 사하맨션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 된다.
사하맨션은 그 자체로 절망적이다.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 뿐이다. 그래서 더 끔찍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허구라고 할 수 없는 SF소설의 묘미다. 세계는 점점 자본을 가진 자들이 몸집을 키우고 있고, 점점 정보기술력으로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자본과 정보에서 도태되는 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자본과 정보가 없어 도태되는 난민이 되는 것도 시간 문제다. 당장 키오스크 주문이 어려워 20분동안 주문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있다는 기사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먼 미래의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을 느낀다.
페미니즘적인 요소들도 있다. 일단 주요 인물들과 그나마 절망을 딛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점, 어쩌다 저지른 살인에 죄책감을 가지는 점(남성중심의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여자 여럿 죽이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인 장치로 소비되고 있다. 거기서 여자가 죽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 등장인물들이 남성이 아닌 서로에게 연대하는 점 등이 소설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
디스토피아적인 배경 때문인지 영화 '설국열차'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절망에 절망만 가득하고, 마지막 '반란'도 성공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희망이 단 1%도 느껴지지 않는 <사하맨션>이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 또한 이 도시에서 '사하'가 될 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공포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더 깔끔하게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아직까지도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약 2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는데, 읽었다는 표현 보다는 <사하맨션>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급속도로 휘몰아친 여행 때문에 아직까지도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어지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