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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의 나날

[도서] 감시와 처벌의 나날

이승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실천문화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은 대부분 쉬운 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와 있거나 시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실천문화사에서 나온 시집들을 한두 권 정도는 읽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번에 이승하 작가의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이라는 왠지 모르게 두려운 시집을 읽게 되었다. 시의 제목을 보고 두려운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감시, 처벌 이라는 단어가 주는 말의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조선말기 일제에 의해서 강제 점거당하는 역사적 진실의 시간을 거쳐 몇 번의 혁명과 민주항쟁, 시위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도착을 한 나라이다. 일제치하에서는 일본경찰에 의해 감시와 처벌을 받아왔다. 그 후에도 일제가 아닌 같은 동포에 의해서도 감시와 처벌을 받아왔고, 알게 모르게 우리는 지금도 감시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단어가 조합된 시집의 제목을 보고 누구라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한 시를 만들어 낸(?) 시인은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의 이름은 이승하. 그 전에도 시를 좋아해서 많은 시집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처음 듣는 이름 같기도 하고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이 실린 시집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라는 제목은 낯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읽어본 적이 없다. 한 번 읽은 시집은 꼭 흔적을 남기곤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이름과 시집이 낯설지 않은 걸로만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

 

그의 시들을 차례차례 다 읽고 나서 제목만 목차에서 읽어봤다. 왠지 모르게 죽음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시 제목이 아니라 시 안의 구절 속에서도 죽음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나오면 그 공간에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벽 안쪽과 벽 바깥쪽을 구분 짓는 시에서도 구분에 따른 답답함과 단절에 따른 고독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또 어떤 시에서는 세계 2차 전쟁 당시 생겼던 아우슈비츠를 통해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희망보다는 절망과 슬픔, 고독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낀 감정들이 이 시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짜 실체의 감정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인의 책 속에 담긴 시들을 뱉어냈을 때의 감정이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느낀 건 모두 이야기했다.

 

출소라는 시를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 출소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출소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죽기 전에 유언처럼 말했다라는 시의 구절도 그렇고, “입관식”, “수의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도 그러한 생각에 보태기를 한 셈이다. 왠지 죽음과 관련된 출소가 아닐까. 죽기 전에는 출소를 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사형을 당했거나, 아니면 자연사로 죽음을 맞이한 출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죽음을 통한 출소를 통해 자신이 죽인 사람에게 사죄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죽인 사람이 저승에서 기다릴까요. 만나면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이 구절을 통해서 후회라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죄인이 왠지 모르게 종교에 귀의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상상이지만. 종교에 귀의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나는 이 시에서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시집 안에 있는 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편만 추려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다 이야기하면 왠지 스포일러가 되는 것 같아서- 이것도 범죄가 되는 거 아닐까? - , 스포일러는 되고 싶지 않네요.

감금와 감시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시에서 말하는 존재란 과연 뭘까? 사람. 인간, 일까? 아니면 그 외의 존재들.

또한, 음식 값 조차 내지 못해서 죄인이 되어버린 이 시대 하층민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프랑스의 작가인 위고가 지은 소설 속 주인공인 장발장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 시가 처절하게 보이는 건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 음식 값을 다 내지 못했다는 죄에 대해서 우리가 우러르고 받드는 신인 하느님조차 벌을 내려야 할지 고민을 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신고를 통해 죄인을 만들어버리는 상황 때문이다. “하느님이 벌을 내릴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 식당주인의 신고로 죄인이 된다이 시대는 어쩌면 하느님보다 인간이 더 우위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이 시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존재가 존재를 감금한다하지만 그 다음 시 구절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존재는 존재를 변호 못 한다” - 왜 일까? 변호를 못한다는 뜻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감금은 할 수 있으되 변호는 못한다는 것은.

이 시에는 한국의 현실도 만날 있다. 행색이 어려울 수 있는 어떤 이국에서 온 여인. 아마도 이 여인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면서 왔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현실은 녹록치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어떤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한국말을 못하는 이국의 여인으로서는 자국인에게 이야기하지만 통하지 않음으로써 죄인이 되어 감시를 당하고 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신의 고향은 에베레스트가 있는 가장 높은 하늘을 지닌 나라 네팔인데, 사지가 멀쩡한데 왜? 자신이 감시를 당해야만 하는지 이 상황이 답답해하는 것 같다.

탈옥수의 하루를 읽으면서는 조금은 재미있는 상상을 해봤다. 이 시는 탈옥수가 그려내는 드라마의 초안이 아닐까? 이 초안에는 탈옥수의 심리묘사만이 표현이 되어 있지만 나중에 탈옥수 외의 인물들이 가미가 되면서 완벽한 드라마 한편이 탄생이 되는 건 아닐까. 만약 이 드라마의 탈옥수에 적당한 배우가 있다면 누구일까? 강동원, 아니면 이승기. 이민우도 있지, 또 누구를 거론할 수 있을까? 이 시는 이런 상상을 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읽어보면 탈옥수로서의 가슴 졸임에서 오는 답답함, 후회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억울한 일로 죄인이 되었다면 누명을 벗기겠다는 결심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탈옥수에게 길이란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길은 지금, 차단되어 있다그리고 자신 외의 모든 구둣발 소리는 이렇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구둣발 소리는 모두 / 미행하는 이의 구둣발 소리 같다고여기에서도 감시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시집의 제목 때문이겠지. 미행이라는 단어에서 내뿜는 이미지도 감시일 테니 말이다.

CCTV 아래에서의 생을 읽으면서 이 시 제목에 딱 맞는 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인의 삶이지요. 엘리베이터 한쪽 천장을 보면 있어요. CCTV. 거리를 걸어도 CCTV가 있고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도 CCTV는 매달린 채 자동차를 노려보면서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CCTV가 매달리는 건 우리가 삶에 매달려 시간을 달리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힘든 삶이죠. 그러면서 늘 감시당하는 삶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CCTV를 보는 그 장소에도 한쪽 천장에는 CCTV가 달려있어서 CCTV를 감시하는 사람들을 또 감시할지도 몰라요. 그러고 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CCTV뫼비우스의 띠. 그 안에 현대인들은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면서 살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 이야기네요.

 

시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시가 어렵기도 하고, 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 이 책 읽으면서 시는 다 읽었지만 마지막에 있는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읽다가 말았습니다. 해설을 읽어버리면 그나마 쉽게 느껴지던 이 시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면서 서로가 어색해지고 어려워질까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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