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의 대표작인 빌러비드는 흑인 노예의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책을 읽을 때만 해도 흑인 노예에 대한 이야기는 교과서나 영화에서 많이 접해서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영화보다 참혹했다. 이 책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그 지옥 같은 상황을 묘사하는데도 그 묘사가 너무 아름다워 비극을 더 극대화하는 효과를 줬기 때문이었다. 문장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읽게 될 정도이고 읽고 난 후에도 너무 좋았다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나의 감상평에 한탄할 뿐..
많은 매체를 통해 흑인 노예의 삶을 단편적으로 봤다고 해도 그들의 참상을 내가 감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주인공 세서가 노예로 돌아갈 바에야 자녀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생각하는 게 잔인하긴 해도 그 마음이 이해가기도 했다.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그 고통을 그녀가 너무 잘 알기 때문 아닐까. 폴 디가 세서에게 너는 네 발 달린 짐승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들은 세서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어느 누구도 세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빌러비드가 등장했을 때 너무 무서웠다. 내가 죽인 아이가 나타난다면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읽고 나니 빌러비드는 죽은 세서의 아기뿐만 아니라 무고하게 죽어나간 흑인 노예들의 영혼을 대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 억울했을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서 진실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살아있는 사람이 끝까지 기억해주길 원하는 그런 마음이 형상화된 게 아닐까. 그리고 정말 무서운 건 그들의 영혼이 나타났다는 점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아무렇지않게 죽이던 그때 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는 지는 해이며, 과거는 뒤에 남겨져야 할 무엇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만히 뒤에 남아 있지 않는다면, 그래, 그때는 발로 짓밟아줘야 마땅하다. 노예의 삶이든 자유인의 삶이든, 하루하루가 시험이고 시련이었다. 자기 자신이 해결책인 동시에 문젯거리가 되는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 겪는 것으로 족하니라." 아무도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