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안전가옥 시리즈를 거의 처음 읽은 것 같은데... (이랬는데 완독 목록에 있는 거 아닌가 몰라) 무튼 책의 제목이나 책표지가 굉장히 독창적이라 맘에 들었다. 게다가 기이한 현상이라니. 귀신 무서워하지만 귀신얘기 좋아하고 심야괴담회를 사랑하는 나에게 꽤나 흥미로운 책이었다.
소설은 총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소수만 알며 정부에서도 비밀리에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기이현상청에 대한 이야기로 국내 요괴도 등장시키면서 소설을 끌어간다. 각각 요약하자면 노을빛을 내기 위해 미세먼지를 계속 대기중에 유입한 사건, 가짜를 만드는 정령과 진짜를 구분하는 정령이 만들어 낸 초코바 아이스크림 사건, 일루미나티가 만들어 낸 인간에게는 위험한 환각제를 섞은 삼각김밥, 죽은자를 다시 살린다는 마그눔 오푸스, 마지막으로 세종대왕의 혼이 경복궁을 점령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단편을 보고 기이현상을 해결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인간이 아닌 요괴와 유령에게 임무를 주는 하청업체를 운영한다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가장 별로였던 단편은 경기도 지명이 다 나왔던 삼각김밥과 세종대왕 이야기였다. SF소설이면 아예 다른 세계를 창조하지.. 계속 아는 지명이 나오니까 비현실을 현실로 계속 돌리려는 느낌이라 흥미가 조금씩 더 떨어졌다.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괜찮을 수 있겠다 싶은 책이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위험천만한 기이의 존재를 서류상으로 확인할 때마다 새로운 걱정거리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도, 지긋지긋하리만치 평범한 일상 곳곳이 묘한 빛깔로 덧칠되어 가는 것도.
이제 겨우 첫번째 일거리를 마쳤을 뿐인데 영희예씨앞에 높다랗게 쌓인 저 예순두건어치의 서류 더미를 전부 파 내려갈 즈음엔 대체 세상이 얼마나 달리 보이게 될까.
“선배,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세종대왕님이 백성을 왜 해쳐요?”
한순간의 여유를 틈타 녹즙을 빨아 먹던 세경이 그 말에 나루를 빤히 쳐다보았다. 비록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그 눈빛은 명백히 ‘무슨 당연한 소리냐’란 말을 하고 있었다.
“아, 진짜! 옛날에 한국사 공부했다면서, 왜 뭐만 물어보면 반응이 그래요? 제 말은, 다른 혼이야 우리가 많이 다뤄 봤어도 이번엔 세종대왕님이잖아요. 한글 만드신 성군. 그런 분이 왜 저렇게 안개를 치고, 백성을 가둬서 때리고 그러느냔 얘기예요. 설마 맞춤법 안 지켰다고 이러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