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이었는데 우리나라로 망명했다? 오랜 기간 동안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고생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이는 텔레비전에서 접한 사례다. 나라 이름이 콩고였나 그렇다. 아프리카의 다른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 이 나라도 아마 내전이 발생한 모양이다. 자신과 노선이 다른 이들이 정권을 장악했고,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나라를 뜰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비해 외국인들이 상당수 증가했다. 지하철에서 나와 다른 생김새, 나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마주 대할 때마다 난 그들에 대해 궁금해한다. 과연 어느 나라 출신일까. 무엇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걸까.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를 찾은 이들도 꽤 된다. 그들의 열악한 처지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혹여나 체류기간 갱신에 실패해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면 그들의 열악한 처지는 더욱 가중됐다.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를 문제 삼았다간 아예 추방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몇몇 못된 고용주들은 이를 악용했다. 너희는 가난한 국가에서 온 열등한 존재라는 식의 사고가 말과 행동에서 묻어났다.
난민. 조금은 낯설다. 중동에서 민주화를 갈구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졌던 나날들을 떠올려 본다. 목숨을 건 싸움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끊이지 않는 감시,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피해 사람들은 탈출을 감행했다. 난민 발생의 이유는 다양했다.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를 믿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수단이라는 나라에서는 양성애나 동성애도 처벌의 대상이었다. 나라가 나서기 전에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이 제 명예훼손을 들먹이며 응징에 나서기도 한단다. 인간은 존엄하다는 명제는 가볍게 무시됐다.
한국은 훌륭하게 민주화를 이행한 모범국가다? 사람들은 말했다. 당시로선 한국이 유일한 선택 가능 항목이었다고. 그들은 한국의 시스템이 매우 개방적이고, 한국에만 가면 난민 지위를 인정 받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믿음에 반하는 경험을 한 그들이 겪은 혼란은 나의 혼란보다 더욱 심각했을 것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대한 증언은 한결같았다. 성의가 없다,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게는 7-8시간 혹은 그 이상 동안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지만 소용 없었다. 상대는 영어를 알지 못했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작성된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나는 난민이 아니며, 얼마든지 자국에 돌아가서 생활할 수 있다, 나는 자국에서 안전하다? 그들은 비록 서명은 했지만 자신의 진술에 배치되는 내용이 그 서류에 적혀 있음을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알았다고, 자신이 그 서류에 대해 충분히 설명 받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재판 또한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변호사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판까지 할 수 있다면 사정이 나은 편일 수도 있다. 대개가 돈이 없었고, 정보가 없었다.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를 알지 못했고, 알아도 행하지 못했다.
난민으로 입국하고 나서 6개월 동안은 아무 일도 해선 안 된다. 불법 취업을 목적으로 입국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책에 등장했다. 다급하게 고국을 빠져나온 몸이므로 현금을 지녔을 리 없다. 혹 돈이 있어도 소액일 것이므로 6개월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다. 운이 좋게 비자를 발급받아도 처지는 나아지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갱신을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해야 한다. 4대 보험은커녕 하루에 12시간 이상도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입국 당시 겪었던 숱한 감정들을 떠올리면 마음 역시도 내키지가 않을 가능성이 높았고.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에 CCTV라도 달아서 그 곳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관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저들이 어떠한 삶을 이제껏 살아왔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저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누구도 난민이 되기를 갈망하며 이 세상에 태어나진 않는다.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면 저들 역시도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길 꿈꿨을 것이다. 유행처럼 번져 나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부터 빗겨 나간 저들의 삶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을지에 정답은 없겠지만, 분명 지금의 이 태도는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