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번화했는데.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죄다 말끝을 흐렸다. 많이들 떠났다. 삶의 퍽퍽함을 이기지 못하고 더 열악한 곳으로 쫓기듯 가버린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당시에도 연세가 지긋하셨으니 어쩌면…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사진에는 대전 지역의 골목길이 담겼다. 야트막한 담장만큼이나 도로의 폭은 좁았다. 까치발을 들면 어렴풋이 앞집 풍경을 엿볼 수도 있을 법했다. 한 때는 보편적이었을 풍경이지만 줄곧 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겐 낯설기도 했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 간격은 골목이라 칭하기엔 너무도 넓었다.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소는 오직 놀이터가 전부였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는 사정이 나아졌다 하나 나 땐 수시로 드나드는 차량을 피하다 보면 놀이의 흐름이 끊기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역시 서울은 여느 지역과는 모습이 다르다며 사진에 깃든 정겨움을 마구 찬양했다. 그렇지만 얼핏 보아도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는 책은 2011년에 출판된 것이었다. 2011년이라 하면 얼마 전 일 같은데, 손가락을 꼽아가며 헤아리니 벌써 여러 해가 흘렀다. 11살 꼬마가 스무 살을 바라볼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게 되므로, 같은 장소를 지금 찾는다면 사진과는 전혀 다른 풍광과 만날 것도 같다. 어디 풍경만 달라졌겠는가. 사람도 확 바뀌었을 것이다. 재개발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태도가 날카로워졌다. 개발된다는 말이 있어 버텼는데 소문만 무성했다는 이도 있었다. 바로 옆 동네는 확연히 달라졌는데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은 상황을 어느 누가 편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다른 건 바라지 않으니 도로라도 잘 닦아주어서 오토바이 등이라도 이동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목소린 참으로 소박했다. 그들은 한 때 세상을 뒤흔들었던 재개발과 뉴타운 정책이 흐지부지 되리라는 걸 과연 알았을까 싶다. 한 몫 단단히 벌 수 있으리란 기대 심리에 들떴던 이들이 결코 자신이 살던 곳에 도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걸 어쩌면 몰랐을 수도 있다. 알았을지라도 상대적 박탈감은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삶은 원래 끊임없는 비교 끝에 황홀해지거나 비참해지는 법이니까.
타인의 처지에는 아랑곳 않은 채 나는 맘껏 사진에 취했다. 이런 장소가 혹 서울에도 존재한다면 카메라 하나 들쳐 메곤 방문해 보고 싶단 충동이 일어났다. 정갈함은 덜할 수도 있지만 시간의 때가 묻어나는 골목길이 나름 그리웠다. 경험이라 하는 건 개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닌 듯, 골목을 뛰논 경험을 전혀 해본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거창하게 이를 표현한다면 ‘아카이빙’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오늘날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고, 나름의 기억을 지닌 이들 또한 시일이 흐르면 소멸하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은 가치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매순간 사진을 찍고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행위는 필히 해야 한다. 모든 건 찰나요, 언젠가는 아무도 이 순간을 기억 못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유행 마냥 번져 나간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비슷한 시도가 행해지고 있음을 잘 안다. 얼마의 사업비를 수중에 넣기 위함이 아닌, 진정 마을을 아끼는 마음으로 행하는 기록은 훗날 모두를 웃고 울게 만들 것이다.
날씨가 춥기도 하지만 요즘 난 많이 게을러졌다. 전엔 타인의 시선 따윈 아랑곳 않고 발걸음 닿는 족족 사진을 찍고 글을 썼는데, 지금은 카메라를 든 내 모습을 응시하는 제3 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 기록 과잉의 시대다. 양산되는 정보는 많은데, 그로부터 가치를 발견하기가 힘드니 오호라 통재 [痛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