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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을 읽는다.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면 늘 함께 거론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마르크스다. 마르크스가 더 위험할까, 아니면 엥겔스가? 앞뒤를 다투는 위험 인물로 한 때 우리 사회에서 여겨졌음을 감안하면 시대 참 좋아졌다. 좋아진 건 이 외에도 많다. 인간이 만드는 다양한 제도들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애초의 어설픔은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정교해진다.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해진 법망은 쉽사리 붕괴하지 않을 우리 사회의 건재함을 증명해 보이는 듯도 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도 그랬다. 언제라도 명확히 말하긴 힘들지만 인간이 만들었고,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같은 현상도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오늘은 엥겔스의 시선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책이 쓰여진 건 1884년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987년으로 6월 항쟁이 있던 바로 그 해다. 숫자가 주는 묵직함에 우선 기가 눌린다. 책 제목 앞에는 루이스 H.모오간 이론을 바탕으로라는 수식어가 덧붙었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가 없으므로 서문이 소개하고 있는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친구 맑스가 세상을 떠나고, 엥겔스는 맑스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듯하다. 맑스가 기본으로 삼았던 유물사관과 모오간이 취한 연구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으며, 엥겔스는 미개에서 문명으로 진화해간 인류의 흐름을 보다 명확히 함으로써 맑스와 모오간 사이에 가교를 놓으려 애썼다. 엥겔스는 어느 것이 모오간의 주장이고,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지 쉬이 구분이 갈 거라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무지한 나는 이를 일일이 구분하려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분할 수도 없었다. 어려우면서도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가족, 사유재산, 국가 삼자가 모두 오늘날에도 건재하면서 동시에 뜻하지 않은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서였다. 가족 없이 홀홀단신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어렵다. 수중에 지닌 돈 한 푼 없어도 마찬가지요, 무국적자의 삶은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버거울 게 분명하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 정체성의 일부를 형성하고, 존재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므로 이를 의심했다가는 불온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이상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마냥 책을 읽으며 나는 인간의 시야로선 상상조차 버거운 시공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됐다.

오늘날의 시선에선 미개라고 밖에 표현이 안 된다. 부모와 혹은 형제 자매와 성 관계를 하고 자녀를 출산한다는 가정에 대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게 분명하다. 왜 그런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 않는다.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사고가 모든 질문을 원천봉쇄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가족이 부모와 자녀의 단란한 구성 형태를 지니지 못했으며, 자신이 속한 혈연 집단 외에서 배우자를 구하려는 노력 또한 기울이지 않았다.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혹은 그와는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 그렇다곤 하나 이는 무질서와는 또 달랐다. 아이는 모계 혈통을 따랐으며, 이는 자녀 출산의 주체 만큼은 명확히 할 수 있었으므로 효과적이었다. 부계 혈통주의 혹은 가부장제는 적어도 이 시기까진 전통이 아니었다.

후대로 넘어올수록 우리가 칭송해 마지 않던 문명들이 등장했다. 점점 더 사회는 세분화 됐으며, 남녀 간 힘의 균형도 조금씩 무너졌다. 가사일의 가치가 하락했고, 자연스레 이를 주 역할 삼은 여성의 지위도 낮아졌다. 사실 여부는 여전히 알 길 없으나 초야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교환이 점차 질서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고 하니 교환의 대상이 여성이 된들 무엇이 이상하겠느냐마는, 여성의 정절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회와 이의 공존이 과연 가능할까는 의심이 갔다. 일부일처제는 남성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계속된 주장은 당대로선 파격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생활 자체가 남성의 몫인 이상 형식적이건 실질적이건 국가의 일 또한 남성이 도맡았을 것이요, 사적 영역을 들여다 보고 서로 다른 잣대로 남녀를 평하고 벌하는 것 역시도 남성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그럴싸했다.

두께만을 놓고 보자면 큰 부담은 안 든다. 그렇지만 다룬 시대가 방대했으며, 내용 또한 얕지는 않았다. 책이 쓰여진 지 한 세기도 더 흐른 지금이다. 많은 게 그의 시절과는 다르지만,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되며 권력자의 바람대로 세상은 재편된다는 진리만큼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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