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접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오늘날처럼 화려한 그래픽은 당연 없었고, 오로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화면이 전부였다. 게다가 엄청나게 그려 터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신기했고, 왠지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그 때만 해도 컴퓨터 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인터넷을 이용할 거라 굳게 믿었건만, 이후 변화는 엄청났다. 오늘날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터넷 없는 삶은 아마 감옥과도 같을 거다. 직접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지 않더라도 꼬꼬마 친구들의 시선을 잠시나마 빼앗는 유튜브 화면 등도 인터넷이 아니라면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하철, 버스 등에서 모두가 코를 박고 응시 중인 휴대폰 모니터 속 세상 또한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은 오늘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굉장히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SNS다. 사진을 올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멘트를 함께 다는 방식이다. 해시태그를 이용해 검색이 가능은 하나 자료 관리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그럼에도 인스타그램만의 매력은 분명 존재한다. 저마다 올린 사진을 볼 때마다 난 모방 욕구를 느낀다. 저들이 방문한 장소, 저들이 체험한 레포츠, 저들이 먹었다는 음식 등이 날 유혹하는 거 같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들의 매순간이 그리 화려한 건 아닐 텐데도 난 타인의 삶을 엿보며 그들과 비슷한 수준을 향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단어에 과도하게 꽂혔던지, 소위 과시하기 좋아하는 혹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실상 간의 간극이 존재하는 현 세대에 대한 일종의 비판 즈음을 기대했다. 물론 그와 같은 내용도 존재하기는 했다. 내면을 다져야 한다는 식의 조언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라는 판단이 설 정도로 오늘날 사람들은 ‘보여주기’를 중시하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의 인기몰이는 그와 같은 세태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식의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콘텐츠의 생산 주체 또한 자신들이 보여주고자 만들어낸 생산물이 곧 자신의 삶 전부는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의 소비는 기본이 된 시대인 만큼 하루에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러 마시는 커피 한 잔 정도는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가 당연히 감당해야만 하는 일상이 된 지 오래라고 모두가 여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 약 10년 정도의 시간을 나눠 특정 세대로 구분했던 것과 달리,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태어난 이들의 경우에는 비슷한 성향을 공유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왔기에,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유사한 콘텐츠를 함께 소비하며 성장했다. 진정 같은 세대인지는 잘 모르겠고, 눈 뜨면 세상이 달라지곤 하는 오늘날과는 다소 모순되는 설명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거 같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점을 향해 소실(!)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사람들의 삶을 고려한다면 이와 같은 진단도 어느 정도는 유효하지 싶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었으며 내 관심을 끌었던 이야기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저자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의 다양한 분야를 바라본 이야기를 전개했다. 역차별까지 논의되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이 비난 받으며 각종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하는 시대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 자신의 어머니에게 존재했던 유일한 세상이 가족이었다는 것, 가해자를 향한 분노만으로는 세상을 결코 뒤바꾸기 힘들다는 것 등. 소위 어른들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세상을 고민할 줄 모르며 오로지 개인사에 매몰된 삶을 살고 있다 주장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저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임으로써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 세대를 보여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능력이 부족한 것도, 그렇다고 마냥 나태했던 것도 아니다.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서도 평균치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확인받고자 SNS등을 통해 제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게 바로 우리 세대다. 이미 숨이 가쁠 정도로 속도 내어 달리고 있는 말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한다면 외려 역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청년층에게 혹 그리 굴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