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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도서]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김탁환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내 연배라면 아마 학창 시절 과제로 주어졌던 일기쓰기를 기억할 것이다.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뒤늦게 있었던 일 없었던 일을 긁어모아 글을 쓰고, 대체 그날의 날씨가 어떠했던가를 머리를 쥐어짜며 기억하려 들었던 순간이 즐거웠다 말하는 이는 별로 없지 싶다. 과제 검사로부터 해방되기가 무섭게 일기쓰기를 관뒀던 건 당연한 일이다. 글은 종종 썼으나 굳이 내 일상을 기록하려 들진 않았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방식이 아닌 펜을 들고 수첩에 비뚤빼뚤 글씨를 적기란 생각보다 고됐다. 빠름에 익숙해진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났는데 나의 더딘 손놀림은 사고를 따르지 못했다. 시간이 그리 많이 필요한 게 아님에도 가끔은 귀찮다는 이유로 건너뛰기도 하였다. 꾸준함을 재능으로 보긴 힘들 터이나 모두에게 허락되는 건 아님을 배웠다. 밋밋한 나의 일상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하는 일 역시 쉽지가 않았다. 일기를 남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주객전도와도 같은 일을 벌여야 하나 고민도 했더란다.

 

내게 떠오르는 건 섬진강뿐인 ‘전남 곡성’. 나날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위기 소리를 듣는, 도시라 표현하기 어려운 곳으로 저자는 떠났다. 글의 소재를 찾아서, 집중력 발휘가 가능한 공간에 머물고자. 작가에게는 떠날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있기 마련이나 어디까지나 작품 구상과 연관이 있을 때의 일이다. 저자처럼 원 거주지에서의 삶을 아예 정리하고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지 싶다.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아도 섬진강변에서의 삶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좋은 사람들이 그 곳에 있었다. 하지만 막연한 동경에만 기댄다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는 몸소 농사를 지었다. 땅을 다지고 씨앗을 심어가며 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였다. 초보 농사꾼의 농사는 수월치 못했다. 시행착오가 이어졌지만 지치지 않았던 건 농사는 사람의 영역이 아닌 하늘의 도움에 따른 것임에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허나 조금은 쓸쓸할 것도 같은 집이 안식을 제공했다. 동네를 떠돌던 길고양이들이 기꺼이 그의 벗이 되어 주었다. 그 중에는 자연스레 나이 들어 움직임이 더뎌진 녀석도 있었다. 볕 좋은 날이면 엎드려 움직일 줄 모르는, 다가서도 인지 못한 채 휴식에 여념이 없는 녀석은 비록 인간은 아니었으나 삶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였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은 아니었을 텐데도, 일 년이라는 시간이 빼곡하게 들어찬 책은 알찼다.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쾌감에 취해 시작된 독서는 어느 시점부터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따르는 느린 걸음과도 닮은꼴로 진화해 나아갔다. 농사에 일가견 있다는 이로부터 받은 꽃씨가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색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오래도록 버림받았던 공간에 사람들이 오가며 들어찼을 온기를 상상했으며, 열 명 남짓한 지역 주민들이 인내심을 발휘해가며 끝끝내 저자가 준비한 과정을 모두 소화해내고 느꼈을 희열에도 동참했다. 여전히 내겐 낯선 장르인 판소리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품게 됐다. 우리의 것이지만 재미라곤 몰랐고, 더구나 아무나 즐기는 것 아니라며 멀리하기까지 해왔다. 비록 소리 아닌 글로 접했으나 마냥 높았던 장벽이 조금은 허물어진 듯했다. 얼굴 아닌 발에 탈을 쓰고 표현하는 일이 필요로 할 정교함을 고민하는 일도 즐거웠다. 섬진강 옆이라 가능했던 일일까. 시간을 잊은 듯 흐르는 강줄기와 닮은 삶이었다.

 

오로지 사람만 고려하고 사람의 안위만을 중시하는 이제까지의 삶과 곡성에서의 삶은 달랐다. 저자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위해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무(無)의 실천에 대하여 설파했다. 40분 글을 쓴 후 맞이한 20분의 달콤한 휴식, 논두렁을, 강변을 거닐며, 스스로 시간을 머금은 채 성장하는 작물들을 바라보며 그가 살아낸 시간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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