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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미술관

[도서]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도처에 CCTV가 널려 있다. 과거처럼 카메라를 소지하지 않아도 폰을 꺼내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사진 혹은 영상을 볼 때마다 조금은 두려움을 느끼고는 한다. 그럼에도 기록을 게을리하지 않는 건 순간을 담아내는 즐거움에 중독된 탓일 것이다. 기술이 충분치 않던 시절의 사람들은 이런 즐거움을 몰랐을 거다. 살짝 안쓰러움이 밀려오는 것 같으면서도, 아예 상상조차 불가능한 영역에 속한 일이라고 생각하자 지금을 살고 있는 내 자신에게 고마움이 들기도 했다. 대신, 그들에겐 그림이 있었다. 개개인의 창조물이자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하지만, 주어진 조건 하에서는 최선이자 최고였다. 많은 화가들이 기꺼이 작품 활동에 나섰다. 그들이 시대의 소명을 매순간 명심했을 거 같진 않다. 나름의 고결한 행위에 대한 보상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생전에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이가 존재하는 반면 그림 한 점을 판매 못한 이도 있었다. 어찌 이와 같은 일이 하나의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었을지. <기묘한 미술관>은 많은 생각을 선사한 책이었다.

전시 등을 관람할 때마다 나의 무지를 탓하게 된다. 친절한 설명이 덧붙지 않으면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야 마는 나의 무능으로 인해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이 얼마나 드넓을지. 책은 그런 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조금은 다른, 그러나 동일한 대상을 다루고 있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 부분이 보다 수월하게 읽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밀의 방> 챕터였다. 내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건 카를로스 2세의 모습을 담은 후안 카레노 데미란다의 그림이었다. 화가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림 속 인물은 그간 접해 온 주걱턱의 실체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고결한 신분의 유지는 예나 지금이나 중시되는 바다. 유럽에서는 이를 위해 친, 인척 간의 혼인이 비일비재했으니, 카를로스 2세를 비롯하여 합스부르크 가문의 많은 인사들이 그로 인해 고통받았다. 길어도 너무 긴 턱은 보기에만 흉한 게 아니었다.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았고 수시로 침이나 음식을 흘리는 등 의지를 배반한 일들이 수시로 벌어졌다. 아예 단명하는 일도 잦았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운명을 익히 알고 있어서 그런지, 카를로스 2세의 모습은 유달리 창백해 보였다. 한 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인생이 폈던 당대 화가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멸시하면서 동시에 동경하는, 내 안의 끊임없는 갈등에 번민하며 창작활동에 임했을 이들이 탄생시킨 예술은 어째서 더더욱 위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라비니아 폰타나가 그렸다는 <안토나에타 곤살부츠의 초상화>는 연관된 이야기를 다 읽고 났을 때 서글픈 감정이 앞섰다. 그림 속 인물은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얼굴이 털로 뒤덮였는데, 선천적 다모증이 원인이었다. 차이가 차별의 기제로 작동하는 일은 지금도 빈번하다. 하물며 이해도가 훨씬 낮았던 과거에는 인간 아닌 무언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잦았다. 다발성 신경섬유 종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았던 존 메릭의 삶을 다룬 영화 ‘엘리펀트 맨’과 오로지 돈만 좇던 P.T. 바넘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나 그로 인해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절실하게 다가왔던 ‘위대한 쇼맨’ 등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세상을 우린 지향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 즈음에 서 있을까.

독특한 색감,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것만 같은 화풍을 선보였던 앙리 루소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앙리 루소 또한 세상의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그의 자존심은 꺾일 줄 몰랐고, 그 덕에 그의 그림은 누구의 것과도 닮지 않은 독창성을 지닐 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오늘날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고흐의 경우엔 좀 더 불우했다. 작가는 그의 죽음이 자살이 맞는지, 존재했던 의문들을 조심스레 제기했다. 하루에 거의 한 편씩 작품을 탄생시켰던 말년의 고흐, 강렬한 그림만큼이나 삶을 갈망하는 마음도 강한 듯했지만 갑작스레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인생은 기묘했다. 어디 고흐 뿐이겠는가. 아예 ‘미술관’ 앞에 하나의 수식어로 사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림도 인생 못지 않게 참으로 기묘했다. 대혼란을 표현한 것과도 같아 보였던 ‘쾌락의 정원’과 어쩌면 존재하는 모든 건 닮은꼴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하므로 두려운, 그러나 응시하면 나름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그림도, 우리의 삶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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