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 백발 성성한 노인부터 아주 어린 아이까지. 저마다 각자 짊어지고 태어나는 시간이 존재하는지, 죽음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모든 죽음은 아프고도 슬프다. 특히, 사회 전반을 충격으로 몰아넣는 사건에 의한 죽음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사건의 해결 자체가 요원하다. 원인을 놓고 벌이는 왈가왈부. 사람이 죽었는데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다. 급기야 제 입맛에 맞게끔 각색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 모양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배경인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을 읽으며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구석이 내 눈엔 먼저 들어왔다.
열차가 탈선했다.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한 열차, 사망자 수는 계속 늘었다. 사고가 난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 또한 사망했다. 열차 회사에서는 기관사가 과속을 했다는 말부터 시작해, 사고의 원인을 둘러대기 바빴으며, 소정의 위로금을 주는 것으로 사람들을 달래려 들었다. 이미 떠난 사람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일억천금을 손에 쥐더라도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목소리를 높일수록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상실하는 듯도 했다.
소중한 사람이 열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약혼자를 잃은 여성, 홀로 오래도록 사랑했던 상대방을 보내야만 했던 학생, 아버지를 잃은 아들 그리고 사고의 주범이라 손가락질당한 기관사의 아내. 저자는 남은 자들의 슬픔을 주목했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기 전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그려내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후회할 일만 가능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함께 했던 순간에는 행복 외의 감정들도 수두룩했다. 기름 묻은 아버지의 작업복을 부정하려 들었던 아들의 모습에 울컥했다. 제 부모의 모습을 비루하다 여기며 거부하는 건 자식들의 공통점이라도 되는가.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의 눈에 그려진 남편의 모습 또한 선했다. 어색하게 경례를 붙이던 손을 얼마나 놀려댔던지. 두고두고 그리워할 순간이 될 거라고, 당시로선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영혼이 제 속할 곳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세상에 일정 기간 머문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는 바다. 이야기는 이러한 전제에 기대어 쓰여진 듯, 영혼들은 매일 밤 탈선한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미 발생한 일을 되돌릴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를 만나기 위해 기꺼이 열차에 오른다. 지켜야 하는 총 4가지 규칙은 단순한 듯하지만 지키기가 어렵다. 죽음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아야만 한다는 생각, 차라리 나도 함께 죽는 편이 나으리라는 판단 등에 모두가 시달린다. 마음은 굴뚝 같지만 누구도 죽은 자의 세계에 속해서는 아니 된다. 그들에게 니시유이가하마 역은 가까우면서도 닿을 수 없는 공간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러나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즐길 수 없는 부류의 일이 세상엔 넘친다. 과거에 얽매인 나머지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음 또한 그래서 발생한다. 어쩌면 저자가 주목한 4명만이 난제의 해결에 성공한 것일 수도 있다. 살아 있으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 아버지와 같은 위치에서 아버지를 인정하며 뛰어넘어 보고자 다짐하는 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든 고백 그리고 담담히 건네는 인사까지. 이들은 마침내 제 인생을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극과 극이 통한다더니, 삶과 죽음 또한 만나 활활, 뜨거운 생명력을 낳았다.
마음을 울린다. 오래도록 가슴이 찡할 것도 같다. 반대로, 지루하다는 평도 가능하다. 배경 설명이 길어짐에 따라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에선 이미 집중력을 상실한 이들도 있을 듯하다. 당신이 어디에 속하든, 그건 자유다. 유령 유키호의 제안이 강제가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