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무민 전시회가 열렸을 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떠한 동물로부터 모티브를 얻었는지 알 길 없었으나, 귀염성 짙은 무민의 모습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흠뻑 빠져들었다. 급기야 나는 무민 키링을 잔뜩 가방에 담아 갖고 왔는데, 이를 본 사람마다 갖고 싶다 하는 통에 혼쭐이 나고야 말았다. 이토록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든 인물, 토베 얀손은 어떤 인물일까. 영미 국가에 상대적으로 기운 시선을 갖고 살아온 우리로선 일단 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이 어렵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레 인물에 대한 이해 측면에 주력하게 됐다.
스웨덴어 사용자이며 동성애자이자 여성인 토베 얀손. 이름 앞에 덧붙은 수식어가 무척이나 묵직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맞붙어 있지만, 우리와 일본이 그러하듯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이라 할 법하다. 스웨덴이 오래도록 핀란드를 지배해온 지난 역사로 인해 쌓인 앙금이 완벽히 해소되려면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듯. 자신을 향한 차가운 시선을 받아들이며 이 인물은 살아갈 운명이었다. 두 번째 특성인 동성애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보다 앞선 사회라 하여 차별이 없음을 뜻하진 않는다. 책에 따르면 핀란드에서 동성애는 1971년까지 범죄로, 1981년까지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됐다. 모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거나, 아예 스스로를 속이거나 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 단어인 ‘여성’도 그에게는 일종의 제약으로 작용했다. 때는 1900년대 초중반이다. 핀란드는 꽤나 일찌감치부터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지만, 모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 전면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여기에 유럽 전역을 뒤흔든 세계대전도 빼 놓아선 안 될 것이다. 부모가 우파의 입장을 취했다곤 한들 전쟁의 참혹함이 유독 그의 가족만 빗겨 갔을 리 없다.
그는 제약보다 가능성을 바라보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분히 현실적이었으면 상업적이기도 했다. 그림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어쩌면 그만큼 트렌드를, 대중의 취향을 잘 파악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현실화되진 못했지만 우표 작업에까지도 손을 뻗었다는 대목을 읽으며, 혹 내가 그의 삶을 오해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낭만보다는 처절함에, 살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 주어진 기회를 무조건 거머쥐어야만 했던, 시대 낭만을 논하는 건 다분히 어리석은 태도일지도. 무민의 캐릭터 또한 다시 보게 됐다. 당시로서는 추구하기 힘들었을 정상 가족의 이상향을 무민 가족을 통해 실현하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된 가족. 지금의 시선에선 마냥 평범하지만 그 땐 그와 같은 평범함도 사치 같이 여겨졌다. 서로의 생사를 알지 못해 가슴앓이 했고, 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가족일지라도 외면해야만 했던 현실이 엄연히 존재했다. 적어도 무민 스토리 안에서는 그런 비극을 덜 응시해도 족했다. 전형적인 ‘해피 엔딩’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희망을 품게끔 만드는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한 번 즈음 살아봄직한 삶을 꿈꿨을 것이다.
홀로 뛰어남으로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버겁다. 우선, 토베에게는 아토스 비르타넨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이면서 연인, 남편과도 다름 없을 정도의 각별한 사이로 이 인물은 책에서 소개된다. 펜티 에이스톨라와 툴리키는 무민의 매력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챘으며,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무민의 세계를 미니어처 등으로 구현하는 일에 앞장섰다. 동생 라르스의 공도 잊어서는 안 된다. 무민의 가치가 한껏 치솟던 때, 라르스는 저작권 문제 등을 처리하며 토베가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언급된 모든 인물이 고인이 된 지도 어언 2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는 한 생명력은 유지된다. 무민을 찾는 사람들을 통해 토베 얀손은 이 세상에 머물고 있다. 토베 얀손 게인으로서, 핀란드의 자존심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