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도 모기가 기승을 부렸다. 물리는 족족 크게 부풀어 오르는데다 가렵기까지 하니, 부디 이 계절이 재빠르게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나날이 커졌다. 바퀴벌레와 더불어 모기야말로 전적으로 유해한 존재라는 생각 또한 굳어졌다. 이번에 읽게 된 제목처럼 “모기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이런 생명체가 지구에서 살아가게 됐을지가 궁금했고, 제목에 혹하는 마음이 강했다. 허나 나의 생각이 무척이나 일차원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모기에 대해 별반 언급이 없었다. 호기심 충족을 위해 고른 책치고는 담긴 메시지가 묵직했다. 이내, 내 생각이 무척이나 불경했다는 데까지 결론이 도달했다. 모기의 존재에 의문을 품기에 앞서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 필요했다. 어쩌다가 인류는 제 안위를 위해 다른 생명체를 짓밟는 일에 나서게 됐으며, 고도의 사고체계를 활용해 이를 정당화하기까지 했단 말인가! 이제껏 ‘진보’라는 단어로 칭송하기에 바빴던 많은 성취를 달리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관점에 변화를 기하자 모든 게 명료해졌으며, 많이 늦었으나 이제부터라도 삶의 궤적에 수정을 기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우리는 모든 존재에게 불청객이었다. 모든 종이 합심하고 인류의 제거를 위해 나선다 하여도 전혀 이상치 아니할.
‘다양성’은 중요하다. 결함이 발생했을 때 어느 한 특질만을 지닌 존재는 쉽사리 무너진다. 다름은 공격받아 취약할 수 있는 부분을 대체하고 보완하는 기제로서 훌륭히 활용될 수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차이를 받아들이는데 익숙지 못하다. 급기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차별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인류의 시선은 삶의 터전을 대함에 있어서도 일관성을 발휘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에서 획일화가 마치 발전의 척도처럼 활용됐다. 우후죽순 들어선 건물들은 생김새가 심히 비슷하다. 쌍둥이라 하여도 믿음이 갈 정도로 서로가 닮은꼴을 하고 있다. 흙먼지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거론되던 땅은 시멘트을 뒤짚어썼다. 아이들이 뛰놀 놀이터에서조채도 모래를 볼 수가 없게 된 지 오래다. 대강 짐작을 하긴 했다. 여름철이면 활활 타오르는 아스팔트 바닥이 어떠한 생명체도 품지 못한다는 걸 잘 알긴 했다. 문제는 표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물의 흐름이 끊기고 바닥에서 자라나야 할 생명체들은 숨구멍을 잃었다. 더는 호흡하지 않는 죽은 땅을 딛고 일어선 우리가 과연 건강할 수 있을까. 말끔해 보이던 것들이 실상 파괴의 결과물이었음을 알아채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는 여전히 요원하다. 개발을 일삼던 시절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친환경적인 장비를 도입하고 있는 요즘이다. 시도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으나, 저자는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많은 시도들이 미봉책에 불과하단 걸 지적했다. 들이는 돈은 천문학적인데 거둘 수 있는 효과는 미미했다. 파괴는 그리도 쉬웠는데, 앞으로는 그보다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일지라도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니, 놀라웠다. 아무런 시도도 행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놔두는 게 가장 탁월하다고 저자는 말했다. 한 때 전세계를 강타하기도 한 곡의 제목인 ‘let it be’가 떠올랐다. 비틀즈는 인류가 오늘날 닥칠 문제점을 정확히 팡가해서 이와 같은 노래를 탄생시킨 것일까. 환경을 위한답시고 행한 많은 일들이 알고 보면 오히려 환경에 치명타를 입힐 법한 시도였다니 충격이었다. 이 즈음 되면 모기가 입을 열어 “인간들이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라 물어도 전혀 이상치 않을 듯했다. 안타깝지만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없다 하여 지구가 멸망하는 건 결코 아니다.
일상 속 실천의 중요성은 모두가 나서서 강조하는 바다. 그러나 나 홀로 잘 하는 건 소용없다. ‘필요한 건 팀플레이’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절실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규칙, 돈, 중요도. 모두가 합심해 함께 지켜야 할 규칙, 즉 세계적 협약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구축해 일탈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하는 일이 필요하다. 특정 집단이 손해를 보거나 이득을 거두지 않게끔 수익과 비용을 공정하게 나눔으로써 큰 영향력을 갖춘 정부나 기업 등이 자발적으로 환경을 위하는 일에 참여토록 해야만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소중할 테지만, 우선순위를 결정한다면 다양한 시도들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아마도 이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잘 알려진 표현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여기에, 불확실성을 불안정성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미래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에는 모든 게 유동적이다.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우리 자신이 모든 걸 행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