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원래 하나였으니 결국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은 계속되는 갈등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고는 한다. 남과 북의 이야기다.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눈 만큼 통일이 쉬울 리는 없지만, 최근 들어 더더욱 극심해진 듯한 갈등 양상에 모두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무엇이 정답일까. 묻고 또 묻지만 대답은 없다. 우리가 북한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만큼 북한 역시 우리에 대해 제대로 알 리 없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체제를 경험한 이들의 증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감정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거나 이용하는 것을 뛰어넘어, 통일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단하고 통일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데 증언을 적극 활용해야만 한다.
이런 목적을 갖지 않아도 본 책을 읽는 과정은 지루하지 않다. 결코 지루할 수가 없음은 담긴 이야기가 너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 이를 사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단 말인가. 의심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인물 신동혁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흉은 옅어지겠지만 그의 닫힌 마음까지 우리의 것과 아주 같아지지는 않을 터이다. 그는 14호 수용소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자랐다. 원래 그의 이름은 신인근이었는데, 새로운 삶을 살겠다며 이를 신동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수용소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던 것은 어느 누구도 그곳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북한 정권이 수용소의 존재를 부인하는 상황이었기에 아무도 수용소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신동혁은 그곳 출신이었다. 아예 태어나기를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전쟁 중에 남쪽을 택한 이들이 있어 그는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수용소 내에서의 성실한 삶에 대한 보상으로 결혼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체제가 서로를 배우자로 선택해 맺어주었다. 결합이 인위적이었던 만큼 동혁의 가족 사이에는 정이란 게 없었다. 각자가 서로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해가면서 살았다. 이는 북한 체제가 강요한 감시와도 연관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일에 있어 가족이라 하여도 예외는 없었다. 부모로부터 따스함을 기대하기 이전에 동혁은 제 몫을 챙겨야 생존할 수 있단 사실에 눈떴다. 제 어머니를 위한 식량을 자신이 먹음으로써 생존 가능성을 높였고, 급기야 어머니와 형의 탈북 계획을 밀고하기까지 했는데 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가족을 밀고해 총살로 몰고 갔음에도 그는 이를 당연하다 여겼고, 이에 대한 보상을 원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비열함을 수용소는 그에게 가르쳤다.
수용소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그는 수용소 내 어느 곳에서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 따위를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 곳은 북한 안에 있는 또 다른 감옥이었고, 스스로를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도록 가르침을 받는 공간이었다. 따라서 위대한 혈통을 타고난 지도자에 대한 가르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탈북자들이 겪는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그에게 없었다. 동시에 수용소 밖 세상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그는 습득할 수가 없었다. 체득된 무기력이 그를 죽이고 또 살렸다.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은 절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헛된 희망을 품을 가능성 또한 배제시켰다. 강제로 노동을 해도 먹을 것을 적량 훔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는 만족했다. 재주껏 식량을 훔쳐 허기를 면하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었던 거였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박영철이라는 인물이 다가왔다. 바깥세상을 경험한 그로부터 동혁은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됐다. 고기가 먹고 싶다는, 무엇보다도 강렬한 생존의 본능을 좇아 동혁은 철책을 넘었다. 그에게 탈출 동기를 부여한 박영철은 탈출과정에서 감전돼 사망했다.
이후 함흥과 길주, 청진을 거쳐 중국 허룽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위태로웠다. 수용소에서 익힌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태도가 그를 괴롭혔다. 무사히 남쪽으로 온 이후에도 그는 수용소에서 익힌 패턴의 삶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자신을 가두는 가장 큰 감옥이 될 수도 있음을 그의 삶은 나에게 보여주었다. 제 혈연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죄책감이 비로소 몰려왔다. 무지가 그의 지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제 목소리를 내야만 자신이 치유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용기를 냈고,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했다. 북한, 특히 수용소의 인권 문제를 고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그를 통해 세상은 지금껏 알지 못했던 부조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내 안에 무엇이 나를 막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몇 차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눌러가며 구글 지도 검색에 나섰다. 동혁이 태어났다는 14호 수용소가 위치했다는 곳을 검색했고, 그의 탈출 경로를 계속해서 찾아보았다. 남한 지역과 달리 표시되는 바가 참으로 간결한 북한지도는 낯설었다. 이 낯설음은 앞으로 통일 되었을 때 남과 북 모두가 함께 노력해 없애야만 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북한을 빠져나가고자 시도하지만 실패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특히 수용소에서 태어난 경우라면 비교대상이 없는 만큼 제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탈북 시도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동혁은 운이 좋았다. 많은 이들이 동혁의 존재를 귀히 여기고, 그를 통해 북한을 알려 드는 건 당연하다. 그의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자산이다. 하지만 난 아직그가 충분히 치유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가 입은 상처는 결코 치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그가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난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단지 개인의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가 행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