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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역사 써 내려가기


우리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이 아니라, 도움의 손길을 뻗는 건 도의적인 의무다. 일종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응수한다. 우리나라 안에도 어려운 이들이 많은데 굳이 해외까지 돌볼 이유는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이들도 꽤 된다. 하지만 1년에 단 한 차례의 자원봉사도 하지 않을뿐더러 기부금 한 푼 내지 않는 삶이 우리나라에선 보편적이다. 불평등 또한 능력에 따른 합당한 결과라는 식의 사고가 널리 퍼진 탓이다.

네팔하면 떠오르는 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다. 현지어로 사가르마타(Sagarmatha) 또는 초모랑마라 불리는 이 산의 근처에는 언제나 구름이 자욱한 것이 자연이 산의 높이에 경이를 표하는 것만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인간은 자연의 영험함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돈다발로만 세상을 평하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시선으로부터 내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허나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고, 인간 위아래에 인간이 있을 수 있음을 카스트 제도를 통해 정당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옳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저자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실비아라는 이름의 후원자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네팔 이야기를 풀어냈다. 뉴스를 보아도 잘 사는 나라, 그마저도 대부분이 미국의 소식만을 접할 수 있을 때가 많은 우리에게도 그녀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을 만한 가치가 있지 싶다. 1986년부터 다양한 사회활동과 복지활동을 벌여온 그녀의 이력을 접했다면 해외로 그 시선이 돌아간 것에 대해 의아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하지만 2000년 처음 네팔을 방문한 이래 15년째 각종 프로젝트를 펼치며 네팔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 왜일지가 궁금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네팔을 마음속에 품도록 만든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다.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사람’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사실 네팔의 시스템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나라로서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고, 국왕이 통치를 했다고 한다. 상당히 최근에 두 번째 대통령으로 한 여성이 당선됐다는 소식과 함께 여전히 헌법이 제정중이어서 첫 번째 대통령이 7년째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라나. 게다가 악명 높은 카스트제도가 삶의 곳곳을 장악하고 있다. 브라만으로 대표되는 상위 카스트 사람들이 위세를 떨지 않아도 낮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인다. 사회 전반에 찌든 이러한 구조들을 가다듬지 않고서는 희망을 키우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열정적이었다. 과연 내가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 나의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옳은지를 묻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물질만으로는 버겁다. 딱히 보수가 주어지는 게 아님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곳곳에서 역할을 수행해준 현지인들은 보배와도 같아 보였다. 물론 외국인 활동가들의 헌신도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변화가 정착하고 지속되기 위해선 현지인들의 도움이 절대적일 것이다.

달라지는 건 순식간에 일어난 게 아니다. 책을 통해서였기에 비교적 빠른 속도로 모든 과정이 진행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15년이라는 시간은 한 아이가 태어나 자신의 의견을 올곧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만큼의 긴 시간이다. 중도에 다시금 노동시장으로 돌아가 가족을 부양하기로 결론을 내린 아이들도 있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지난 지진을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건물들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게 취약한 상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제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에서 저자는 사람이 희망임을 발견했을 것이다.

많은 단체들이 해외 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저마다 긴급하다 아우성일 텐데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납부한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길 원할 것이다. 저자의 방식은 1:1 연결은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이 결연 관계 안에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기부금의 쓰임에 대한 보고서를 받는 걸 선호하는 걸 감안한다면 이는 꽤 특이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이 이어지는 건 일종의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순간 모든 것은 무너진다. 내가 납부한 돈이 흥청망청 내가 원치도 않는 곳으로 흘러 들어갈 거라 의심한다면 기부 자체를 꺼릴 것이다. 어쩌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불신부터 무너뜨려야 네팔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비극에 온맘으로 반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팔에서 과연 우리나라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을까. 네팔의 많은 인력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이 왔던 이력을 지녔다. 그들 중 일부는 돈을 버는덴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몸만 버렸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진심과 열정으로 네팔 현지에서 변화의 물결을 창조하고자 노력 중인 한국인들이 지난 날의, 아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불의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옅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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