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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도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저/윤우섭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지음) |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펴냄)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 그리고 똑같은 삶. 그리고 죽음. 산 위로 올라간다고 상상했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일정한 속도로 내리막길을 간 거였다. 그랬다. 다들 내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그만큼 삶은 내 밑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본문 80페이지

톨스토이의 작품에서는 유독 죽음이 자주 등장한다. 톨스토이는 두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홉 살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일찍부터 경험했던 것이 그의 소설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죽음이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부모의 부재로 후견을 맡았던 고모 마저도 그가 열네 살이 되는 해에 사망하고, 유년 시절부터 계속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성인이 되어서도 형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의 소설 중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과 일꾼', '세 죽음' 이 세 편의 중단편은 "죽음을 맞는 자세"에 대해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다. 삶이 죽음으로 인해 더 빛나듯이 톨스토이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죽음 보다는 삶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말기에는 거의 종교인과 다름 없었다는 톨스토이다. 그가 이 세 편의 중단편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죽음을 맞는 자세이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을 맞는 자세를 통해 이들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 인생에서 다가올 미래 중 가장 확실한 미래는 오직 죽음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확실한 것들에 매달리고 버둥거리며 확실한 미래인 죽음은 부정하고 회피한다. 마치 그 죽음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타인의 일이기만 한 것처럼 말이다.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에서 그를 알던 이들이 겉으로는 애도를 표하면서도 속으로는 저녁에 있을 카드놀이를 생각하고, 그의 사망으로 인한 인사 이동과 승진을 계산하고, 이반의 아내는 더 받을 수 있는 연금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조금 더 높은 사회적 위치, 조금 더 많은 소유에 대한 갈증과 욕망에서 소설 속 이반과 바실리 브레후노프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약자를 존중하는 이반 일리치의 속내는 약자를 존중함으로써 그들로 부터 받는 존경심으로 인한 우월감이었다. 이 거짓된 삶이 죽음에 다다르고 나서야 위선임을 깨닫는다. 아울러 자신을 둘러싼 모든 위선도. 오직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라고 말하는 게라심만이 삶과 죽음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정직한 자세를 갖는다.

<주인과 일꾼>에서 이해타산적인 태도로 죽음의 위기에서 신과 협상을 벌이려던 바실리는 죽음의 본질을 깨닫고 변화된 자아로 죽음을 맞았다.

 

<세 죽음>에선 죽음을 맞는 세 가지 자세를 통해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죽음을 그린다.

병에 걸린 귀부인은 끝까지 병의 현실을 부정하고 푸념과 원망만을 늘어놓다가 어둡고 부정적인 고통스런 죽음을 맞는다. 마부 흐뵤도르는 죽음을 인정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장화를 젊은 마부에게 선물하지만 묘비를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며 완전한 초연을 이루지는 못했다. 묘비 대신 나무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베어진 나무만이 타인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죽음을 맞았다. 더구나 귀부인의 죽음 후 사당이 세워지고 흐뵤도르의 죽음 후 나무 십자가가 세워지는 것과는 달리 나무의 죽음은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고 죽음 자체로 주위와 조화를 이룬다.

죽음을 맞는 자세는 삶을 대하는 자세와 통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톨스토이가 전하는 죽음의 이야기로 지난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의 시간을 많은 이들이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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