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필립 드와이어, 마크 s 미칼레 (엮음) | 김영서 (옮김) | 책과함께 (펴냄)
스티븐 핑커의
역사 이론 및 폭력 이론에 대한
18가지 반박
-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표지글에서
표지에 있는 문구를 보고 호기심과 함께 선입견도 생겼다.
'스티븐 핑커의 성공에 학자들이 질투한 거 아니야?'. 그렇게 반쯤은 방어적인 태도로 '당신들의 질투에 절대로 동조해주지 않겠다!'며 읽기 시작한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는 중반부를 넘어가며 '이럴수가!' 라는 탄성을, 마지막 페이지 완독후에는 이 책을 발견하고 읽은 나를 스스로 칭찬하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즐기고 계속하는 각자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독서를 함에 있어 무조건적인 습득보다는 비판적 책읽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를 읽으며 거듭거듭 절실하게 깨달았다. 몇 해전 감명깊게 읽었던 <지금 다시 계몽>과 읽지는 못했지만 본문에서 수없이 거론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대한 비판은 내가 그간 해온 독서가 비판적 독서가 아니었음을 반성하게 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지도 있는 학자이자 작가인 스티븐 핑커의 저서들, 그의 주장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통계와 사실들을 '설마?'하는 의심과 여과없이 받아들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성, 교육, 문명과 과학의 발전으로 세상이 살기 좋은 곳으로 나아가고 인간 또한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나아가는 선한 존재라는 것을 믿고 싶었던 본능이 크지 않았을까. 폭력은 무지와 야만이라고 이해되기 쉽기 때문에 폭력이 감소 되어가는 것이 곧 문명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믿고 싶은대로 보았던 것이다.
스티븐 핑커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제시한 자료와 통계는 편향, 오용되었고 취사 선택되었다. 실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암수 범죄와 폭력은 무시되었고 다소 제국주의적인 관점에서 소수 민족과 유색 인종에게 가해젔던 폭력의 역사 또한 가볍게 지나치거나 무시되었다.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의 결과에 이르도록 거기에 맞춰가는 논거와 자료제시를 통해 이분법적 사고로 독자들을 이끈것이다.
스티븐 핑커는 폭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폭력의 범주를 전쟁에 제한한다. 문명화 되어갈수록 폭력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문명화시킨다"라는 명목으로 가해졌던 식민지 전쟁의 역사는 어찌 설명할 것인가! 중앙집권식 국가의 등장과 부상으로 폭력이 감소되었다고 했지만 공권력과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고문과 처형, 전쟁 또한 무시되었다.
마약 관련 범죄와 고의적인 성병 감염 전파, 어린아이들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드러나지 않은 성범죄, 동물과 자연에 가해진 학대와 훼손 등은 스티븐 핑커의 폭력에 정의되지 않았다. 근현대에 이른 폭력은 감소된 것이 아니라 은폐되고 다양해졌으며 드러나지 않은 암수 범죄는 그 수를 짐작할 수조차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잔혹한 폭력의 역사는 사회적 강자들, 주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합리화되고 포장되었으며 스티븐 핑커가 인용한 통계와 자료에서는 고의적으로 보이는 기록의 누락도 있다.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에는 핑커의 주장에 대한 반박, 핑커 개인에 대한 비난, 핑커의 책은 널리 읽히고 유명세를 타는 반면 전문 역사학자들의 책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등도 보인다. 일반 독자로서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가져야할 비판적인 시각의 부재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분야를 막론하고 책을 읽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