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로마를 다룬 역사 교양서 / 로마 역사
<다루는 책>
제목 : 로마인 이야기 1~15
저자 : 시오노 나나미
출판사 : 한길사
제목 :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
저자 : 최봉수
출판사 : 가디언
제목 : 비잔티움의 역사
저자 :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출판사 : 더숲
주제별로 책을 다뤄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한 책이 바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이다. 올해의 독서 일차 목표로 정한 시리즈인데 일주일에 한 권씩 읽으려 했으나 거의 5개월이나 걸린 시리즈이다. 도중에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도 짧게 읽었고 최근 비잔티움의 역사까지 마무리하였다.
로마인 이야기는 총 15권으로 되어있다. 각 권의 제목과 분량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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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302 페이지
총 6,667 페이지의 대장정이었다. 책을 읽으며 필기하고 공부한 공책만 한 권이 꼬박 나왔고, 이틀에 걸쳐 읽어봤으나 참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다. 나름 요약하고 필요한 것만 적으며 전체 흐름을 이해하려 했는데 정말 큰 줄기만 얻어가는 느낌이다. 결국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보다.
로마의 역사는 트로이가 전쟁으로 멸망할 때 왕의 사위 아이네이아스가 배를 타고 도망쳐 시작됐다고 일컬어진다. 세월이 흘러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나오고 형제 간 전쟁을 통해 형 로물루스가 승리하여 기원전 753년 로마가 건국된다. 총 7명의 왕을 거쳤는데 초기 로마는 정말 조그마한 공동체 정도의 크기를 지녔을 것이다. 주변의 사비니족, 에트루리아인 등과 전쟁을 벌이며 조금씩 영토를 넓혀나가 5대 왕에 이르러 겨우 고대 로마 시내 영토를 안정화시키고 7 언덕 사이에 지하 수로 공사를 시작하였다.
7대 왕 타르퀴니우스가 독재를 일삼자 왕을 몰아내고 임기 1년의 집정관 두 명이 통치하고 원로원 300명이 보조하는 공화정이 시작된다. 이 시기가 기원전 509년이다. 이후 나라의 발전을 위해 당시 선진국이던 그리스로 시찰단을 보내기도 한다. 이 때는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을 벌인 이후이며, 새삼 그리스 아테네의 전성기가 정말 옛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원전 390년 켈트족이 침입하며 로마가 점령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7개월만에 협상으로 물러나기는 하지만, 정말 충격적인 일이고 이후 로마 시내가 점령당하는 시기는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점령하는 서기 410년으로 800년 뒤이며, 이미 멸망을 코 앞에 둔 시기이다.
로마 점령 후 귀족과 평민들의 갈등이 줄어들고 온 힘을 모아 국력을 팽창시키는 시기가 왔다. 주변 군소 국가들을 '로마 연합'으로 편입시키며 세력을 넓히고 기원전 270년 로마 연합의 이름으로 루비콘강 남쪽, 현재 이탈리아 중부 이남을 통일하게 된다.
로마가 지중해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약 500년이 흐른 이후였다.
이후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을 벌이게된다. 기원전 264~241년까지 1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 전쟁으로 불리는 유명한 2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19~206년까지 벌어지게 된다. 1차는 시칠리아를 주무대로 한 전초전같은 느낌이었다면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이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시작된 전쟁이다. 한니발이 로마 코앞까지 진군을 했을 정도로 위협적이었고 말 그대로 국운을 걸고 벌인 전쟁이다.
한니발의 전술이 돋보이는 칸나에 전투로 대표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로마가 자랑하는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아프리카의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승리를 거둔 전쟁이다. 결국 카르타고는 멸망하고, 이 시기 처음으로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지중해의 패권국으로 우뚝 선 로마는 내부의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원로원의 권한이 커지며 빈부격차가 벌어지고 시민의 생활은 안정과 거리가 멀어졌다. 그라쿠스 형제가 등장해 농지법 개혁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이후에도 갈등은 해결이 되지 않고 사회 갈등이 심해지며 로마 연합 내의 내전인 '동맹시 전쟁'이 발발한다.
내전이 마무리된 후 이탈리아 반도 내의 로마 연합은 사라지고 하나의 국가 로마로 통합된다. 이 내전 시 전권을 쥐고 있던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사망하고 킨나가 잠시 등장하지만 이미 권력은 술라에게 넘어가있었다. 술라가 동방 원정을 가던 중 도중에 복귀해 내전을 승리한 후 무기한 독재관에 취임한다. 술라 사후 폼페이우스가 젊은 나이에 권력을 잡고 오리엔트 지역 평정도 이루며 권력을 독점한다.
하지만 이 시기 등장한 로마의 걸출한 인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흐름을 바꾼다. 그는 젊은 나이에는 업적이 전혀 없고 30대 이후 역사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30대에도 별다른 업적은 없고 42세가 된 후 집정관 및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하게 되고 5년간 갈리아 지역 군사 전권을 부여받고 갈리아 전쟁을 벌인다. 이 시기 그가 안정화를 이룬 땅이 갈리아지역, 지금의 이탈리아 북부, 프랑스 전역, 독일 서부 지역이다. 8년에 거쳐 갈리아 원정을 끝낸 그는 단순히 전쟁을 승리한 것이 아니라 갈리아인들의 로마화를 이루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후 로마 말기까지 별다른 반란 없이 로마화가 잘 이루어진 지역으로 남게 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 도중 자신의 입지 안정과 군사력 유지를 위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삼두정치를 유지한다. 이후 전쟁을 마치고 귀국을 앞두고 군사력이 없어진 자신에게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 결국 그 유명한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의 앞날을 두고 폼페이우스와 내전을 벌이게 되고 결국 승리하여 독재 체제를 완성한다. 카이사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 영토를 정립한 사람이다. 북방으로는 브리타니아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갈리아 동부의 라인강과 다뉴브 강을 국경으로 정하였다. 동부 파르티아 원정을 앞둔 마지막 회의에서 과거 공화당으로 복귀를 원하는 자들에게 살해당해 죽는다.
카이사르는 살해당했지만 이미 러시아를 제외하고 지금의 유럽 전체의 50%가 넘는 영토를 차지한 로마 제국은 공화정으로 유지될 시기가 지난 듯 하다.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의 2차 삼두 정치에 이어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내전 끝에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한다.
제국의 미래를 그리고 어느정도 틀을 완성한 카이사르에 이어 아우구스투스의 등장은 스케치의 윤곽선을 제대로 잡은 느낌이다. 원로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공화정 복귀를 선언했지만 정작 정치 형태 및 자신의 특권은 점점 늘리며 사실상 제정으로 이행했다.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국 전체를 통치하면서 제정으로 이행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황제가 통치하기 위한 방법을 전부 마련했다.
이후로는 제정으로 쭉 이어지며 로마 시대는 끝난다. 결국 기원전 753년 왕정으로 시작해 기원전 509년 공화정이 시작되고 내전이 끝난 후 아우구스투스가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기원전 29년 제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후의 황제 목록과 간단한 흐름을 살펴보았다.
나이가 들어 병으로 죽은 경우 자연사, 너무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경우 병사, 이외 다른 요인이 있는 경우 표시해보았다.
호칭 생락 이름 재위 시기 / 사망 원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B.C 27 ~ A.D 14 / 자연사
티베리우스 14~37 / 자연사
칼리굴라 37~41 / 암살
클라우디우스 41~54 / 중독사 or 암살
네로 54~68 / 자살
제정 초기 시기로 그래도 제국이 안정적으로 굴러가던 시기이다. 칼리굴라와 네로 황제는 제국의 재정 파탄과 혼란의 주범이기는 했다.
혼란기
갈바 68~69 / 암살
오토 69 / 자살
비텔리우스 69 / 처형
네로 황제가 사실상 반란에 쫒기다 자살한 후 권력 다툼의 시기이다. 세 황제 모두 차기 황제의 군단에 살해당하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그 뒤를 잇는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69~79 / 자연사
티투스 79~81 / 병사
도미티아누스 81~96 / 암살
짧은 기간은 아님에도 특별한 일은 없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 콜로세움과 경기장, 게르마니아 방벽 등 건축 토목 공사가 많이 진행되었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 오현제 시대(콤모두스 제외)
네르바 96~98 / 자연사
트라야누스 98~117 / 자연사
하드리아누스 117~138 / 자연사
안토니누스 피우스 138~161 / 자연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61~180 / 자연사 or 병사
루키우스 베루스 161~169(공동 통치) / 병사
콤모두스 180~192 / 암살
사실상 한 일은 없는 네르바부터 이후 약 20년씩 통치한 네 명의 황제까지 다섯 황제를 오현제라 부르며 로마 제국 사상 가장 안정적인 시기로 평가한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최초로 속주 출신의 황제로 도나우강 넘은 지역을 속주화하여 다키아 속주 선언을 하고 동방 원정도 기획했으나 원정 전 사망하고 만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약 20년의 재위 기간동안 로마에 있지 않고 변방 속주를 돌며 군단 재배치, 시설 관리, 설비 조정 등 실무에 힘쓴 사람이다. 평생을 지금껏 로마가 쌓아놓은 방위 시스템에 다시 기름칠을 한 사람이라 할 수 있곘다.
이후에도 안정적이던 제국에서 '특기할만한 일을 하지 않았'던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와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자 본격적으로 북방 민족 대이동으로 평생을 게르만족과 전쟁을 하며 지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는 제국의 기틀을 유지하였으나 이후로 무너지게 된다.
내란의 시대
페르티낙스 193 (86일) / 암살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65일) / 처형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193~211 / 전선에서 병사
카라칼라 211~217 / 암살
게타 211~212 /형 카라칼라가 살해
마크리누스 217~218 / 처형
엘라가발루스 218~222 / 암살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222~235 / 암살
콤모두스의 폭정을 이기지 못하고 주변인들이 살해한 후 5명이 황제를 자처하는 시기를 지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즉위한다. 이 때부터 군인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며 군대의 힘이 커지게 된다. 이후 또 다른 폭군 카라칼라를 거쳐 제국이 안정되나 싶었지만 이후 대 혼란의 시기가 찾아온다.
군인황제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235~238 / 암살
고르디아누스 1세, 2세(아들) 238(15일) / 자살, 전사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238(98일) / 암살, 암살
고르디아누스 3세 238~244 / 암살
필리푸스 아라부스 244~249 / 자살
데키우스 249~251 / 전사
트레보니아누스 251~253 / 살해
아이밀리아누스 253 / 암살
발레리아누스 253~260 / 옥사
갈리에누스 253~268 / 암살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268~270 / 병사
퀸틸루스 270 / 암살
아우렐리아누스 270~275 / 암살
타키투스 275~276 / 자연사 or 병사
플로리아누스 276(3개월) / 암살
프로부스 276~282 / 암살
카루스 282~283 / 사고사, 번개 맞고 사망
카리우스 283~285 / 암살
그냥 봐도 알겠지만 장군들이 거듭된 내전 끝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군인 황제 시절이다. 이 시기에 안정적으로 제위를 유지한 황제는 없었고 이 시기는 이제 명성과 통치력보다 군사력을 통제하는 장군들의 힘이 막강해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 이후 로마에서 원로원은 심하게 말하면 우리가 아는 하는 일 없이 뒤에서 밥이나 축내는 존재들로 변하게 되고 과거부터 인재를 양성하던 기능은 사라진다.
데키우스 황제는 고트족과 싸우던 중 사망하여 야만족과 싸우다 죽은 최초의 로마 황제가 되었으며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페르시아와 싸우던 중 포로로 잡히는 등 과거의 영광과 절대적인 우위가 사라진 시기이다.
북방 민족들의 대 이동과 사산조 페르시아 등 새로운 국가들의 출연도 있겠지만 위에서 보듯 어느 부분 하나 안정될 수 없는 구조이기도 했다.
사두정치
1차
디오클레티아누스 284~305 / 자진 퇴위
막시미아누스 285~305 / 자진퇴위
갈레리우스 293~311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293~306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어느정도 혼란을 잠재우고 제위에 올랐다. 당시 페르시아와 북방 민족, 북아프리카 사막 민족과 갈리아 지역의 시민들의 도적화 등 워낙 혼재한 문제들이 많아 황제 한 명이 제국을 통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기였다. 따라서 제국을 넷으로 나누어 각각 필요한 부분을 맡아 방위하는 형태였다. 과거부터 로마 황제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제국의 방위와 시민들의 식량 확보였기에, 이 당시만 해도 전쟁터에 황제가 지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2차
막시미누스 다이아 305~313 / 자살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305~307 / 처형
막센티우스 305~307 / 전사
리키니우스 308~324 / 처형
콘스탄티누스 1세 306~337 / 자연사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동시에 퇴위하고 조금은 잘 굴러가는 듯 했지만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가 사망한 후 또 한번 내전에 휩싸인다. 이 내전 끝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최종 승리하게 되고 제국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동하게 된다.
이 시기 이후 중요한 변화는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증가는 이미 막을 수 없는 상태였고 결국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인정하게 된다. 이후의 황제 제위는 워낙 복잡하기에 따로 정리하지 않겠다. 콘스탄티누스 사후 내전이 일어나기도 하고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외적 침입에 대비해 공동 통치도 점점 많아지게 된다. 378년 발렌스 황제는 동고트족의 침입을 막으려다 사망하기도 하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약탈을 당할 뻔하기도 한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마지막으로 단독통치를 하지만 388년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았다면 교과서에서 볼 수도 없고 특별한 업적도 없는 황제라 생각한다.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동, 서 로마가 서로 다른 국가로 분리된다. 테오도시우스 사후 스틸리코 장군의 존재로 외적의 침입을 어느정도 방어할 수 있었지만 그의 사후 410년, 동고트족의 알라리크에게 로마가 점령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미 수도 주변부를 제외하고는 군사, 행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고, 군대도 시민들이 입대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용병을 사용하는 단계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476년 야만족 출신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임금 체불에 반항으로 로마로 진군해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를 퇴위시키고 서로마는 멸망한다.
동로마 제국도 제국의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절 유일하게 영토를 넓히려는 시도가 있었고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소 국가로 유지된다. 그래도 국가의 명맥은 유지되었고 약 1000년 뒤인 1453년 오스만에게 함락된 후 멸망하게 된다.
로마는 왜 인기가 많을까?
고대 왕국이지만 아직도 인기가 많고 관심을 끄는 것은 넓은 영토와 그 영토를 유지한 기간이 길어서일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은 그의 사후 무너졌고, 중국의 왕국들도 그렇다. 여러 문화권에 걸쳐 형성한 국가 중 이렇게 오래 유지됐던 나라는 없었다.
게다가 기록이 잘 남아있다. 로마사를 기록한 역사서도 많고 고대의 일인데도 이렇게 연도별로 자세히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인더스 문명의 경우 로마보다 훨씬 일찍 상하수도를 비롯해 훌륭한 문화를 갖췄으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누가 그런 업적을 세웠는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서양의 문화권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로 이미 유럽 문화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지금, 유럽의 근간을 만들고 중세 유럽 사회의 뿌리인 그리스도교를 전면에 내세운 로마라는 이름이 주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로마의 역사는 서로마의 경우 천년 이상, 동로마는 거의 이천년의 세월동안 이어져왔다. 작은 나라이거나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제국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다양성과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에 왕권은 안정감이 떨어진다. 실제로 한 왕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시기는 길어야 100여년정도로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한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 나라와 주변 국가들은 왕조가 바뀌면 새로운 국가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같은 지배계층과 같은 영토를 가지지만 왕조가 바뀌면 제도를 바꾸는 중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며 왕조와 국가를 바꾸었다. 일본도 쇼군은 계속 바뀌어왔지만 일왕을 유지하는 것이 같다. 아마도 유교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사회 제도에 경직성을 가져오지만 오히려 지배 계층에겐 유리한 시스템이 이 유교 시스템이 아니었을까? 왕조가 바뀌는 것 자체를 세상이 흔들리는, 있기 힘든 일로 보면서 주어진 체제 속에서 사는 것이 유교를 정치에 도입한 한나라의 생각이 아닐까? 철저히 장악하고 제압하며 통제하는 것, 그러면서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유교를 기반으로 한 동양의 고대 사회의 특징이라 볼 수 있겠다. 반면 로마는 자유로웠다. 어느정도 통치 형태도 지역마다 차이를 뒀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어느정도 인정해줬다. 이러한 차이가 지금의 다양성을 가진 유럽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으로서 황제들의 삶을 보면 너무나 힘들게 느껴진다. 내란 및 군인황제 시절은 워낙 위험한 시기라 여기더라도 그 외의 시기에도 치세를 잘 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처형당하거나 살해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치세를 잘 한 황제들의 경우 어떤가? 인기는 없었어도 치세는 잘한 티베리우스는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 카프리섬에 틀어박혀 정치를 했으며,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경우 대부분의 시간을 변방에서 보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외적의 침입을 막다 전쟁터에서 병사했다. 이 시기의 황제는 권력의 정점이지만 아주 권위가 있지도 않고 실제 행복과는 거리가 아주 먼 존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와 추가로 책 두권을 읽고 로마에 대해 논한다는게 어불성설이긴 하다. 하지만 그냥 일반인이 개인의 의견을 적는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주길 바란다. 로마와 비잔티움에 대해 공부하면서 십자군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십자군을 중심으로 중세 유럽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다음에는 그런 방향으로 책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추천할만한 책이 있나요?
로마 역사와 관련된 추천할만한 책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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