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저자 : 황정은
출판사 : 책과나무
한국 추리소설 중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추리를 사랑한 작가의 오마주 소설집
가족을 둘러싼 사건과 반전의 결말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만 사실 읽는 작가의 폭이 넓지는 않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점점 폭이 줄어들기도 한 듯하다.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좋아하여 오마주한 작품들을 발표하였고 이번에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작품은 총 네 편으로 100페이지 정도의 중단편의 분량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20대 딸과 아들이 있는 네 가족이 있다. 가족은 어머니가 도박 중독으로 이혼하여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살고 있고 아버지와 첫째 딸은 각자 독립해 살고 있다. 어느날 어머니가 음독자살을 하게 된다. 1년 후 29세의 딸이 어머니와 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한다. 과연 어머니와 딸은 자살일까?
●낯선 가족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집에서 투신 자살을 하였다. 아니 투신 자살인 줄 알았지만 부검 결과 청산가리 성분이 검출되었다. 사건 당일 집에서 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총 네명. 20살 어린 재혼한 부인, 회사의 총무부장, 조현병을 앓고 있어 꾸준히 약을 먹고 있는 아들, 그리고 딸이다. 사장은 수천억대의 자산가이고 부인과 총무부장은 내연 관계이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아들과 딸은 아버지에게 월세와 생활비를 타 생활하고 있다.
잠이 든 사장을 창문 밖으로 떨어트린 것은 부인이 인정했다. 하지만 청산가리는 타지 않았다고 한다. 정황을 봐도 굳이 청산가리로 살해 후 투신을 위장할 이유는 없는 듯 생각된다. 방문한 넷 중 누가 사장을 살해했나?
●가나다 살인사건
번화가 뒤편 외진 공터에서 한 남자가 살해된 후 발견되었다. 금품을 갈취한 흔적도 없었으며 정확히 한 번의 칼질로 살인을 성공한 것으로 보아 칼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자가 범인인 듯 하다. 내연 관계인 사람도 없고, 특별히 원한을 살만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점이라면 행운의 편지 형식을 지닌 문자메세지를 받았다는 점. 4일 안에 '가'로 시작하는 지역에 '가'씨 성을 가진 7명에게 이 문자메세지를 전달하지 않으면 죽음이 따른다는 내용이다.
이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은 문자인 듯 했지만, 얼마 뒤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 이번에도 공통점은 행운의 편지를 받았다는 점. 이 사건은 마치 애거서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이런 살인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만의 식사
주인공은 30대 후반의 주부이다. 남편은 얼마 전 실직을 한 상태이고 미숙아로 태어나 성장이 더뎌 또래들보다 다소 작은 중학생 딸이 있다. 그들은 생활비가 없던 차에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가 자기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한다. 생활비도 대주신다고 하신다. 물려받은 재산도 많고 자신이 재산도 많이 불려 60평대의 집에 혼자 살고 있었기에 가족들은 만족하며 들어가 산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을 시녀 부리듯 부리고 운전기사 역할, 비서 역할까지 시킨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멸감을 주는 언행도 서슴치않고 한다. 그녀는 가족들을 위해 참고 있지만 이제 참기 힘들어진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경우 동명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오마주하였다. 차이점은 원작은 섬에 갇힌 사람들 중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거였고, 이번 작품의 경우 배경이 현대 대한민국이다보니 섬에 갇힐 수 없었다는 차이가 있다. 어머니와 딸이 1년 간격으로 같은 방식으로 자살이 연이어 일어나고 특히 딸의 자살 3개월 전 남동생이 그녀 앞으로 생명보험을 들어놓은 사실을 알게 된다. 남동생이 어머니도 죽인 것일까?
2020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한 '가나다 살인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원작 'ABC 살인사건'의 경우 각각 A, B, C로 시작하는 지명에서 각 이니셜로 시작하는 사람이 살해당하며 사건이 벌어진다. 작품 내의 형사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모방한 살인이라 언급하는 내용도 나온다. 가나다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총 세명으로 끝날까? 단순한 모방 범죄일지 아니면 진짜 피해자를 살해할 때 숨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 것인지도 불분명하기에 용의자를 특정할 수도 없다. 범인이 이런 복잡한 방식으로 살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번째 '낯선 가족'의 경우 전형적인 추리 소설 플랫을 따라간다. 용의자가 한정되어있고 그 중 범인을 찾는 형식이다. 다들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다. 새엄마는 사장과 20살이 차이가 나고 총무부장과 내연 관계이다. 사랑이 아니라 돈을 보고 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큰아들의 경우 조현병을 앓고 있고 역시 경제적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죽는다고 특별히 이득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딸의 경우 정기적으로 오빠가 처방받은 수면제를 아버지에게 가져다준다. 사건 당일에도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가져다줬다고 한다. 이후 증거를 찾고, 동기를 찾으며 범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만의 식사는 가족 내에서 일어날 수 있을법한 일을 그린다. 어머니는 성격이 모나고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 돈을 중요하게 여기며 심지어는 하나 있는 딸에게 쓰는 돈도 아까워하고 딸도 사랑하지 않는다. 3년 전 뇌졸중을 앓다 처지를 비관해 남편이 자살한 후에도 여전히 자기 건강을 챙기며 쾌활하게 살고 있다. 반면 그녀의 제안으로 함께 살게 된 주인공의 가족은, 생활비 문제로 함께 살고 있지만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이 가족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누가 범인일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도 정말 좋았고 말 그대로 오마주만 하고 유형과 진행은 뻔하지 않아 너무 좋았다. 다른 작품들의 경우에도 추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 추리 소설을 많이 읽지만 국내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었는데 너무 좋은 작품이라 놀랐다. 가장 흔할 수 있는 가족 내의 살인을 그린 주제도 좋았고, 앞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박 중독, 조현병)에 대해 다룬 것이나 공장 노동자의 건강 문제 등 사회적인 측면과 결부시킨 것도 너무 좋았다.
다음에도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접한다면 흥미롭게 읽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