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감정은 전염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용감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214쪽)
솔닛의 글은 놀라울 정도의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무언갈 또 쓰고, 읽고, 나의 목소리로 삶을 꿰어가고 싶도록 소망을 전염시켰다.
잔잔한 듯 빠르게 흘러가는 솔닛의 글을 읽으며 잔뜩 채워졌다. <멀고도 가까운>은 내가 내내 우물거리느라 끝내 글로 써내리지 못했던 이야기, 무언가 간질거리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움찔 거리기만 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야기, 그리고 나는 아직 보지 못한 것을 꺼내 보여주는 이야기로 꽉 차있었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종이에 간직하고픈 말을 끄적이면서 책에서 눈을 떼지 않기 위해 꽤 애를 썼다.
솔닛은 '이야기'를 소재로 읽기, 쓰기, 고독 그리고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건, 연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우리 모두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은 무난한 방법으로 이런저런 외면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두세 명의 사람에게 써야 할 답장을 보내지 않고 있다.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보호에서부터 정치범과 관련한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와 관련한 이메일을 열어 보지도 않고 삭제하기도 한다. (중략) 타인에게 공감함으로써 자아는 확대되지만 그다음엔 자아도 위험과 고통을 분담하게 된다. (중략)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현자가 아닌 이상 모든 고통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다.' (170쪽)
'오늘날 고통과 파괴에 관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반응을 보일 수는 없다. 완전히 귀를 닫지 않는 이상 어떤 것에 반응하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355쪽)
다양한 고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음 한구석이 내내 불편해짐을 느끼던 중이었다. 그 불편함 중 꽤 큰 부분은 최책감이었고. 몰라서 외면하는 거면 몰라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순간들이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을 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이 싫었고, 스스로가 용기가 부족한 탓이라고 책망하면서 무언갈 새로이 알기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나를 향한 책망이 늘어날까 봐서.
솔닛은 오늘날 고통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기에, 그 많은 고통을 다 이해하고 짊어지고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도 내게 짊어진 적 없는 고통의 짐을 거니느라 끙끙거렸는데,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엄청난 현자가 아닌 이상, 모든 고통에 귀를 기울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여유가 될 때, 조금 더 고통과 위험을 부담할 여건이 될 때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것에 눈을 돌리고 고통을 적극적으로 어루만질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솔닛 덕분에 연대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조만간 그의 책을 더 읽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