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이 지구, 이 행성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현재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일 수도 있지만 지구 밖 우주를 영위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5개의 단편들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표지를 보면 누구나 이 책에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나처럼 책을 고를 때 시각적 요소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책에 마음을 뺏길 것이다. 여성 SF작가 5인이 먼 미래에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 속 세계를 펼친다. 우빛속 이후로 SF와 사랑에 빠져 여러 SF를 읽어봤지만 '우별떠(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만큼 독특한 소재를 지닌 소설은 없었다. 다섯 단편 모두 상상지도 못한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천선란 작가는 <천 개의 파랑>에선 과학과 장애를 논했는데,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에서는 외계 생명체와 싸우는 광경을 눈 앞에서 보여준다. 100일 넘게 지속되는 전투에서 전우를 잃은 주인공 '이인'이 그가 사라진 장소로 향하고 그곳에서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외계 생명체를 만난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인은 생사를 오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준 그 외계 생명체와 연대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나나'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적으로 여기며 경계했던 이인이 어떻게 나나에게 마음을 여는지는 책으로 확인해보길 바란다. 나나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부분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이인과 사라진 전우 '벤'이 대화하고 함께 행동하는 장면들이 더 좋았다. 벤이 사라지기 전, 벤과 이인은 서로 옆집에 살며 죽을 때까지 챙겨주자는 약속을 한다. 이 부분에서 나오는 감정선이 섬세한데, 그들의 관계가 사랑인지 아니면 우정인지 특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런 내 고민도 벤이 사라지면서 끝나버렸다. 외계생명체에게 공격받았을 때 시신의 형태로 남는 사람이 있는 반면, 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도 책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두 번째 단편 <요람 행성>은 박해울 작가가 집필했는데, 황폐해진 지구를 대신해 인간이 살아갈 요람 행성을 '테라포밍'하러 떠난 리진은 인간들이 요람 행성에 사는 생명체를 무자비하게 죽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리진은 어떻게 했을까? 이 대목에서는 '인간은 환경을 어디까지 파괴해야 만족할까'라는 질문을 떠올리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뉴스, SNS를 통해 심각한 환경문제를 겪으면서 '인간이야말로 생태계에서 가장 유해한 존재이자 모든 생명체의 천적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람 행성>은 현재의 환경문제를 인간이 어떤 태도로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해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우린 미래에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을 찾아볼지도 모른다.
<무주지>는 자신만의 아이를 갖는 것이 금지된 무주지에서 살던 클론 '연음'과 '기정은'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는 조건 하에 도영을 키울 수 있다고 허락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목표 행성이 아닌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다. 사실 무주지가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간의 이기심을 없애기 위한 방안으로 공동육아만이 허용된 세상은 생각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하다. <무주지>에서도 역시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목격할 수 있다. '우별떠' 단편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에 의해 생긴 문제를 소설 속에 내포하고 있다. 다른 단편들과는 다르게 <무주지>의 결말은 슬프다. 클론들의 선택이 이해되면서도 서글프다.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클론의 결말이 비참하다.
<단어가 내려온다>에서 독특하게 내용을 전개했던 오정연 작가는 <남십자자리>에서도 양로행성이라는 신기한 공간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노인들을 위해 마련된 양로행성에서 노인 '해리'와 양로행성에 사는 휴머노이드를 관리하는 팀장 '미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아는 휴머노이드를 관리하기 위해 양로행성으로 떠난다. 노쇠한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기억을 주기 위해 미아는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미아는 여행하면서 해리에게 자신의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치매 치료 신기술을 권해보려고 한다. 과연 해리는 미아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남십자자리>는 SF라는 겉모습을 갖춘 가족소설의 느낌이다. 단편을 읽다보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서로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글자를 뛰어넘어 내게로 전해진다.
마지막 단편 <2번 출구에서 만나요>는 외계신호 분석가였던 엄마를 보며 자연스레 외계신호 연구원이 된 '알리'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사춘기의 갈등으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알리는 외계행성에서 보내진 메시지를 통해 인공지능 '유니'와 '2번 출구'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만난다. 유니와의 만남으로 알리는 엄마가 살아생전 했던 일을 보게 된다. 빅스비나 시리 같은 인공지능이 익숙한 내게 유니는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형상은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이지만 인간보다 더 진실된 존재로 다가왔다. 그리고 유니와 알리와의 대화에서 지구에 얼마나 많은 혐오가 산재해 있는지 볼 수 있다.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 느낄 수 있고 혐오가 가득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볼 수도 있다.
우주와 지구, 인간과 인공지능(휴머노이드, 클론 등)의, 인간과 외계생명체의 관계를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느끼고 싶다면 '우별떠'를 읽어보길 바란다. 책을 열면 상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