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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도서]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글/르네 놀트 그림/장성주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여성들은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었고, 계좌 또한 잃었다. 그리고 그들의 노동력은 시녀, 하녀와 같이 재조립, 재분배되었다. 노동력이 재분배 된 여성들에겐 그들을 정의 내리는 색이 부여됐다. 그 중 시녀들이 착용하는 것은 모두 빨간 것이었다. 빨간 색과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상관없었다. 머리에는 가리개를 썼는데, 가리개 또한 규정된 보급품이었다. 가리개는 시야를 제한하는 동시에 드러내지 않게 해주었다. 하녀의 경우엔 녹색을 입었다. 그리고 이들은 외출할때만 두건을 쓴다. 이외에 가난한 남자의 아내는 줄무늬 드레스를 입었고, 미망인은 온통 검게 입었다. 

 

여성들이 빼앗긴건 일자리와 계좌 이외에도 이름과 글도 함께 잃었다. 길리어드의 가게 간판들은 그림으로 바뀌었다. 가게 간판의 이름 조차 과도한 유혹이 될 것이란게 이유였다. 유혹이 될것이란 건,  글이 지금 살고있는  공간을 낯선 눈으로 되돌아보고 의심하도록 만드는 묘한 힘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잃은것 보다 필자에게 더 충격이었던건 이름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오브프레드의 이름도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오브프레드라는 이름은 소유자인 남성의 이름을 조합한 가부장제적 이름이었다. 시녀 뿐만아니라 소유주인 사령관 아내 '세레나 조이' 역시 그녀의 본명이 아니었다.

 

이름은 한 사람. 그 존재 자체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이름을 잃었다는건 그 사람 존재 자체를 잃었다는것이 된다. 다시말해, 내것이 내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시녀들의 몸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국가의 자원, 길리어드의 것이었다. 길리어드의 자원이 된 여성들의 몸은 번식을 위한 기계가 되었다.

 

번식을 위한 기계가 되었으므로 여성들은 생산할 수 있는 여자와 생산할 수 없는 여자 둘로 나뉘었다. 이때 생산할 수 없는 여자는 콜로니로 가야했다. 아니면 은밀한 클럽으로 가거나...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콜로니에는 배성자라고 불리우는 동성애자와 나이든 여자 그리고 세번째 기회를 망친 시녀들도 있었다.

 

콜로니 중에서도 도시 게토에 있는 콜로니는 최악이었다. 잘먹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보호복없이 수많은 시체를 소각해야했다. 잘먹이지도, 보호복도 없었던 이유는 비용때문이었고, 이곳에 주로 배성자와 나이든 여자들이 있던 이유는 그들은 모두 폐기처분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직 생산할 수 있는 여자로 분류된 시녀들은 매달 한번씩 의사에게 검사를 받았다. 소변, 호르몬, 자궁경부암, 피 검사 ... 예전과 똑같은 검사였지만 상황은 달랐다. 검사와 의례는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어있었다.불임은 금지된 단어였고, 기계가 사라졌다는 것으로 보아 낙태 또한 금지되었음을 알 수있다.  낙태가 가능하다면 누가 딸을 낳고 싶어하겠는가... 한 시녀가 딸을 나았을 때, 오브프레드는 말한다. '가엾은 것' 그럼에도 비아로 태어나지 않았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사회가 되었고, 여성들은 그저 소유주의 깨지지 않는 장난감과 다르지 않았다. 오브프레드의 전임자처럼 사라지면 다시 들이면 그만이었다. 

 

<시녀이야기>는 예사였던 일이 예사가 아닌 일이 되었고, 예사 아닌 일은 예사가 되어버린, 다시말해  비정상적으로 변해버린 공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디스토피아적 이야기이다.  필자는 이 소설을 그래픽노블로 만났다. 그래픽노블로 만난 <시녀이야기>는 더욱 끔찍했고, 그 끔찍함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일까?  읽는 동안 극심한 두통과 싸워야했다. 머리가 아팠고 속이 좋지 않았다.

 

세상이 이렇게 비정상적이고 끔찍하게 변한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  처음 여성들이 노동력을 빼앗겼을 때 항의했다면 달라졌을까?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존재하는 언론사들이 폐간되었을때 항의 했다면 달라졌을까?  조금 더 빨리 눈여겨 보고, 어떻게든 자유로워질 방법을 찾으려고했다면 오브프레드, 세레나 조이와 같은 수많은 여성들은 이름을 잃지 않아도 되었을까?? 처음부터 한번에 장악되진 않았을것이다. 밸트로 시작해서 코르셋이 되었고, 코르셋에서 전신 수영복이 되었을것이다. 다만, 그렇게까지 생각 못했을 수도 혹은 알고도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늦은 것일까?? 꼭 그렇진 않다. 멈추지 않는 한 돌이키지 못할 세상은 없다고 말하는게 디스토피아 소설의 또 다른 매력 아닌가!

 

힘의 논리가 지배되는 세상을 향해 "싫어"라고 말하는 인물이 나타난다. <시녀이야기> 속에서 "싫어"라고 말하는 인물은 '모이라'다. 모이라는 오브프레드의 오랜 친구였다. 그녀는 시녀 양육 교육센터인 레드 센터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한동안 오브프레드는 모이라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오브프레드가 모이라를 다시 만난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 그곳은 말도 수입도 잃은 여성들이  자신의 개성을 살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이 곳에선 버터를 얼굴에 바르는 대신 크림을 바를 수도 있었고, 피처럼 빨갛고, 칙칙한 녹색이 아닌 다소 화려한 옷도 입을 수 있었다. 많이 수치스럽더라도...말이다. 그렇다면 모이라는 탈출에 성공한 것일까?

 

도서는 끊임없이 말한다. "자유로워지려면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봐!" 라고, 하지만 길리어드 속에 들어가있는 필자는 도저히 모르겠다. 아니 알아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필자의 유일한 탈출구는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오브프레드는?? 

 

오브프레드에게 길리어드는 덮으면 탈출가능한 책이 아니고, 화살표를 따라 나가면 그만인 영화관도 아니다. 현실이다. 눈을 감았다 떠도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일을하고, 맥주도 마시며 모이라와 수다스럽게 떠들 던 소소한 추억들은 깨고싶지 않은 악몽이자, 저주받은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필자는 오브프레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장을 넘기며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치니 두통이 다시 번져왔다. 속도 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필자는 길리어드에게 묻고 있었다. 이 공포를 기획한자는 누구인가?  왜 이러한 공포를 기획하였는가?  비아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지만, 그들에게 답을 들을  순 없을 것이다. 필요는 바람과 다르니까, 아마도 길리어드의 수호자들과 비밀경찰인 '눈'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 말할게 뻔하다. 그러니 치열하게 더 고민해봐야 할것 같다. 

 

"길리어드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뭘 해야하는지"

 

무수한 벽을 만나겠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그리고 아직은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남았다. 긴 괄호속에!! , 그리고 그들이 있는한, 메이데이, 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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