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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독립문자리에 영은문 그리고 더 위에 모화관이 있었다.

청일전쟁전까지 중국사신이 오면 모화관에 있었고 왕세자가 대신들을 데리고가 재배하며 모시러 갔던 곳이고 사신이 돌아갈 때는 백관이 모화관 문 밖 길의 왼쪾에 순서대로 늘어섰다가 일시에 재배례를 하고 전송했다.

독립문이 있던 자리에 세운 영은문도 중국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쉽게 말해서 고려는 독립국가였으며 조선은 다국적기업이 현지인 지사장을 일제시대는 본사에서 파견한 지사장을 두었다는게 결론이다.

19세기말 강화도에서 신미양요,병인양요,운요호사건이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어떻게든지 조선이 잘싸웠다고 과장해서라도 이야기하겠지만 우리가 K.O.패한건 확실하다.

신미양요만해도 그들은 단2명만 전사하고 요새를 함락했으며 철수한것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 소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운요호사건은 미국의 패리제독이 쓴 전법을 그대로 베낀것으로 이것이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으로 연결된다. 왜 우리가 졌을까

고대로마가 흥성할 수 있었던 건 실패한 곳에서 무언가 교훈을 끄집어내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기인해 굵고 길게 살 수 있었다.

조선은 쇄국으로 일관하다 임진왜란이란 국난을 맞아 크게 깨달아 광해군에 의해 개혁개방정책이 추진되었으나 쇄국파들에 의해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은 제주도로 유배가고 병자호란을 스스로 자초하게 된다.

그렇게 쇄국을 하다 해양대국들에 의해 강화도에서 싸움이 벌어지게되는데 다시 말해 신미양요,병인양요,운요호사건은 조선과 서구세력의 싸움이 아니라 17세기와 19세기의 싸움이었다.

로마와 달리 조선은 가늘고 길게 사는 정책을 추진했으며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아무것도 끄집어 내지 않는 방식을 고수했다는 얘기다.

그럼 왜 조선은 쇄국에 성공했을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보기 싫은 것도 볼 줄 알아야한다.

중국에 고개숙여 식민지로 살아야 자신의 기득권이 유지되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유지했다는 점과 또 5%의 양반지배층이 95%의 피지배층을 다스리려면 서로 계급을 나눠 서로 싸우게해야했기에 중인 양민 노비 백정등 계급을 차등했던 것이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보릿고개나 전염병등이 판을 쳤다해도 나라나 대가댁에서 곡간을 풀면 나라전체가 자급은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왜? 인구가 적었으니까 중국에서 식량을 끊는다는 가정을 한다해도 조선은 별로 무감각해 했을것이다.

내 생각에 그 당시 인구를 최고로 잡아도 2천만은 훨씬 밑돌았을 것이다.

97년 IMF사태때 난 음식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외국에 돈을 지불못하면 피자도 못만든다는 말이 떠돌고 식량문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1990년에 남북한합쳐 7천만이었으니 그 때는 7천5백만을 육박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남한인구만 5천만을 훨씬 웃돌고 있고 인구를 계속 늘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논밭은 자꾸 메워지고 신도시와 도로는 그 위를 자꾸 덮으며 정부는 사력을 다해 인구증가정책을 추진한다.

만일, 외국에서 식량을 끊는다면 우린 무얼 먹고 살아야하나

조어도문제 독도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인구증가이다.

9세기 일본의 인구는 6백만이었다. 

다시 임진왜란이 끝난후  명나라군사들이 토한 음식을 먹으려고 서로 싸우고 정유재란시 울산성전투가 끝날무렵 식량이 없어 일본군도 조선인도 배고파 시체를 뜯어먹고 아이를 납치해 먹었다 그 사람들이 우리 직계조상인걸 우린 잊고 산다.

카니발도 원주민들의 식인풍습에서 나온 단어이다.

학교,교회,군대,직장같이 급식받는 사람들은 식사후 한 번만 주변을 둘러보자 음식 아까운줄 모르고 그냥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냥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생각없이 남기는지 살고있는지 5초만 주위를 둘러보자

북한이 못산다 비웃지만 남한보다 식량자급율이 높다는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될까

그들도 중국에서 식량공급을 끊으면 한달도 못가 정권이 붕괴될것이다.

남한도 미국이나 태국등에서 식량수출을 중단하면 반달도 못간다. 우린 그걸 잊고 산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건 인구증가정책이 아니라 인구억제정책이다.

우리가 지금 북한핵에 대항해 핵을 갖겠다고 난리지만 만약 미국이 안된다고 그러면 식량을 끊겠다고하면 바로 고개를 숙여야되는게 우리가 처한 현실인데 우린 제 발등을 찍는 인구증가정책에 사활을 걸고있다.

TV에서 셰프들끼리 요리하는것만 재밌게 본다 요리도 식량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걸 우린 잊고 산다.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 서 맨마지막 장면 초가집에 아이들이 놀고 있다.

그 땐10명은 기본으로 낳았고 영아사망률도 높았다.

일제시대이후 사망억제기술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45년 3천만, 90년 7천만, 2010년 8천만, 2016년 8천만을 훨씬 웃돌고 지금은 막대한 세금을 써가며 9천만을 희망하고 있다.

인력난 그건 학원급 4년제 대학을 폐지하고 기업의 이력서에 출신지역이나 출신학교란을 없애는 것도 방법중하나일 것이다.

수를 중시하면 질을 유지하기 어렵다.

역사책의 전쟁씬을 보면 소모전,농성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소모전 식량이 먼저 바닥나는 쪽이 지는 것이다 농성전 먹을게 있어야 농성을 하지..

우리가 가장 잘아는 일본인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다. 그는 조선으로 치면 백정계급에서 왕족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장군시절 사용한 전법중 먼저 함락시키고자 하는 성주위에 상인들을 침투시켜 높은 값에 식량을 사들인다 어느 정도 사들였다싶으면 상인들을 철수시키고 성을 포위공격한다. 그럼 대부분의 성을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점령할 수가 있었다.

이제 좀 정심좀 차리자 강화도조약의 껍데기만 보지 말자.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습성이 있다. 이제는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한다.

중국어선이 왜 한국에 오겠는가 그 많은 인구 감당을 못하니까 오는 것 아닌가 중국은 뒤늦게나마 한가정 한자녀 갖기 강제캠페인을 했었다.

그걸 어기면 강압적 제재가 뒤따랐었다.

이제 우리도 그런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선경지명은 보기 싫은 것도 보는 눈이 있을때 생기는 것이다.

제발 집단적 최면에서 깨어나자 정신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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