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월 31일입니다.
슬슬 계절이 바뀌는 듯한 느낌이 오는 시간입니다.
유난히도 덥고 습했던 2018년의 여름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8월에 저에게 의미를 던져준 책 3권을 모아봅니다.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 제 생각을 바꾸고, 저에게 변화를 일깨워준 책을 소개합니다.
[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작가의 여행 이야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한장한장 넘기는 손맛을 느끼게 되고, 글을 통해 저자의 감성을 전달받으며 여행을 꿈꾸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책이다.
이제 여행 중독자가 되어버린 나에게 만약 유럽 여행 초보자가 "딱 한 도시만 골라 여행할 수 있다면, 어떤 도시를 추천해주시겠어요?"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피렌체를 권하고 싶다. 걸어다니는 속도로 여행을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쳐준 도시, 몇 번이나 샅샅이 구석구석을 돌았건만 '그래도 그때 놓친 것이 있구나!' 싶어 또 가고 싶어진 도시가 바로 피렌체였기 때문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 오직 걷기만으로도 도시 곳곳을 편안하게 돌아볼 수 잇는 피렌체는 골목마다 색다른 풍경을 펼쳐놓아 지루할 틈이 없다. 피렌체는 소도시의 매력과 대도시의 매력을 동시에 갖춘 희귀한 도시다. 크기로 치면 소도시이지만, 사통팔달한 교통과 휘황찬란한 볼거리, 다양한 문화적 체험, 여행자의 지적인 욕구와 예술적인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켜준다는 점에서 그 어떤 대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07쪽)
계획과 충동이 뒤섞인 여행을 좋아한다니, 책을 읽으며 내 여행과의 교집합을 찾는다.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으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장소가 있는가 하면, 귀로 듣기에 더욱 달콤한 장소가 있다… 글을 읽으며 나의 옛 여행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다음에 여행을 간다면 어떤 곳에 갈지, 오래전 가본 곳이지만 기억에서 희미해진 곳도 떠올린다.
그때 느낀 그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완벽한 언어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망설임과 궁리 속에서 매번 조금씩 이전과 다른 나를 향해 1밀리미터씩 아주 느리게 바뀌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아도 나만이 느낄 수 잇는 미세한 진동과 균열이 어쩌면 '진정한 나에 가까운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떠날 때 나는 비로소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진짜 나 자신이 된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걷고, 달리는 야간열차 속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눈꺼풀이 지구만큼 무거워질 때가지 글을 쓰고, 꿈속에서도 아름다운 문장을 찾아 헤맨다. 그럴 때 나는 가장 나다워진다. 누가 통과 의례를 '성인식'이라고 했던가.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지독한 마음의 통과 의례를 치르고, 그때마다 조금씩 오히려 어려지고, 철없어지고, 해맑아진다. 그 새로 태어남이 좋다. 그 나다워짐이 좋다. (204쪽)
가본 곳은 그곳의 풍광을 기억하고 있지만 저자만의 감성으로 되살리는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가보지 않은 곳은 글을 통해 새롭게 마음에 담아본다. 여행 책자를 읽는다는 것은 책을 쓴 사람의 감성을 들춰보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의 풍부한 표현력에 감탄하고 여행을 바라보는 눈을 보며 시야를 넓혀본다. 나는 미처 표현하지 못한 내 마음을 저자의 목소리에서 들을 때, 비로소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는 꼭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몇몇 곳을 추가한다. 당장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인생 우화] 인생을 우화로 풀어낸 류시화 시인의 신작 우화집
이 책의 저자는 류시화. 하지만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저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동시에 엮은이이고 번역자라고 작가의 말에 밝힌다. 친구 레나타 체칼스카가 없었다면 이 책의 탄생은 불가능했다며, 그녀는 헤움에서 멀지 않은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 있는 야기엘로니안대학교에서 힌디어 문학과 우르두어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한다. 어느 날 그녀가 헤움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를 한 편 보내준 것을 시작으로 거기에 내용과 구성을 덧보태 저자의 방식으로 다시 써내려가 이 우화집이 완성된 것이다. 일러두기에 보면, 이 우화집은 폴란드의 작은 마을 헤움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에서 소재를 빌려와 새로 쓴 우화들과, 그 이야기들에 영감을 얻어 작가가 창작한 우화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45편의 우화가 수록되어 있다.
경전, 철학서와 함께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가 우화집이다. 우화가 인간 삶의 허구를 꿰뚫으며 진실과 교훈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헤움 마을의 주인공들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문득 우리가 사는 세상이 헤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혹은 우리의 공동체가 그렇게 할 때, 헤움 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344쪽_작가의 말 中)
신은 천사에게 지시했다. "지상에 있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모두 자루에 담아 데려오라. 내가 그들을 지혜로운 영혼으로 바로잡아 다시 세상에 내려보내리라." 천사는 힘겹게 설득하며 어리석은 영혼들을 자루에 넣었는데 이들은 몹시 저항하며 발버둥치고, 그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천사는 자루의 무게 때문에 날개의 통제력을 잃고 휘청거렸고, 키 큰 소나무의 뾰족한 솔잎에 찔려 자루 밑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자루 안에 있던 영혼들이 일제히 쏟아져 산 아래 마을로 굴러떨어졌다. 영혼들이 우연히 굴러떨어진 곳은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으니…….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모여사는 헤움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믿는 '바보들의 마을, 헤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은 것이다. (11쪽)
이 책을 읽다보니 알겠다. 내가 우화를 많이, 그것도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큭큭 거리며 읽어나가며 생각에 잠긴다. 단편으로 엮인 책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읽고 그 안에서 교훈을 찾는다. 이 책을 읽으며 바보 마을 헤움이 우리 세상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보 같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우리 삶 속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고, 남 이야기같지 않은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프롤로그부터 첫 번째 우화부터 시선을 끌어들여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마음에 드는 책을 읽었을 때의 뿌듯함,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었다. 기분 좋게 읽으면서
책장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읽으면서 우리네 인생을 생각할 수 있기에 독서의 시간이 의미로 채워진다. 책 제목에 있는 단어 '인생'과
'우화' 모두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어쩌다 한 권씩 보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건넬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교수의 건명원
강의
이 책의 저자는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로 '건명원'의 원장을 맡고 있다. 한편을 지키는 일에 안주하지 않는 '경계의 철학자', 낡은 가치를 버리고 주체적 개인으로 사는 '반역의 철학자',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행동하는 철학자'이다. 군더더기 없고 명징한 그의 글과 강연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변화시켜왔다. 그는 철학적 사유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내며, 기존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준다. 그의 메시지는 외부의 시선을 기준으로 살았던 이들에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한 열망을 일깨워준다.
이 책은 2015년 건명원에서 한 5회의 철학 강의를 묶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았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당연히 산업이든 정치든 문화든 종속적이다. 이런 삶을 벗어나고 싶다. 훈고에 갇힌 삶을 창의의 삶으로 비약시키고 싶다. 종속성을 벗어나서 독립적인 삶을 함께 누리다 가고 싶다. 남들이 벌여놓은 판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물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일은 이제 지겹다. 우리는 정말 우리 나름대로의 판을 벌여보는 전략적인 시도를 할 수 없을까? 선도력을 가져볼 수 없을까? 그 질문에 철학적인 높이에서 답해보려는 시도가 바로 이 책이다. (17쪽_초판 서문 中)
철학을 한다는 것은 앞선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 즉 사유의 결과들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숙지한 내용들을 계속 퍼뜨리고, 또 그들이 남긴 철학적인 내용 그대로 따라 사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사용했던 시선의 높이에 동참하는 능력을 배양해서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한다.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철학이지, 철학적으로 해결된 문제의 결과들을 답습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89쪽)
이 책을 읽으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철학하는 일이란 남이 이미 읽어낸 세계의 내용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을 갖는 일이다.'라는 것이다.
강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강의를 듣듯, 이 책을 읽어나간다. 현장에 있는 듯 생동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그러면서 철학에 대해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낸다. 계속 생각하고 철학하게 만드는 책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기에 철학에 깊이 있게 다가가기 위한 필수 코스로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