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고 보니 2019년의 절반이 흘러갔습니다.
생각해보니 올해는 매달 습관처럼 추려보던 베스트 책 선정을 게을리했네요.
이번 달에 다시 짚어봅니다.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 제 생각을 바꾸고, 저에게 변화를 일깨워준 책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김대식의 로마 제국 특강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아니, 어쩌면 마르크스의 말대로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리고 두 번째는 희극으로 재탕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손바닥보다 작은 기계 하나로 이 세상 모든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 인류는 왜 여전히 가난과 전쟁과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 답은 어쩌면 매우 단순할 수도 있다. 3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본질적으로 리모델링되지 않았다. 단순히 맹수를 피하고 사냥을 하고 파트너를 차지하도록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사용해, 이제는 문명을 만들고 정치를 해야 하니 결국 같은 실수와 착각을 반복하는지도 모르겠다. (18쪽)
저자가 뇌과학자라는 데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 지루하게만 생각하던 역사, 그것을 뇌과학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는데 어찌 흥미롭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사람의 속성이 있는 이상 흥망성쇠는 항상 있는 법이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뇌과학자가 짚어주는데, 그것이 참신해서 이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격하게 몰입해서 읽었고, 읽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고, 모두가 한 번쯤은 봐야할 책이라 생각된다. 가까운 책장에 꽂아두고 틈틈이 다시 꺼내읽고 싶은 책이다. 소장하고 싶은 책이어서 적극 추천한다.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박찬일 셰프의 이 계절 식재료 이야기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글재주까지 있다. 그래서일까. 풀어내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가게 된다. 옛 기억도 맛깔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음식에 대한 지식도 꽤나 유용하게 짚어준다. 지루한 나열이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 식재료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를 소화해내 적재적소에 끄집어 낸다는 것일테다. 그래서 이렇게 계절 식재료에 대해 풀어내는 에세이를 통해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하며 읽어나가는 시간을 보낸다.
읽어서 알고 나면 몰라서 못 먹어보는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에 책을 낸다. 맛있는 것 못 먹고 지나가는 여러분의 인생이 아쉬울 것만 같아서.
여기 묶은 글은 <하퍼스 바자>와 <중앙일보>에 연재한 것임을 밝혀둔다. (275쪽)
인생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질 때, 입맛이 없거나 일상에 무기력해질 때, 제철 음식이 삶의 감각을 깨워주고 기운을 차리게 도와준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이 계절에 먹지 않으면 몸살을 앓는 음식이 있듯 이 계절에 필요한 위로가 있다'고 말이다. 지식도 채우고 읽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책이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왕이면 제철 식재료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식탁을 차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식물 도감] 세밀화로 그린 큰 보리도감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계절, 자연으로 눈길을 돌릴 때, 잘 모르는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서 식물 도감을 찾아보곤 한다. 야외에 나갈 때 가지고 다닐 만한 크기부터 제법 묵직한 책까지 구비하고 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식물 도감을 보면서 이렇게 설렜던 적이 있던가?'
세밀화로 그린 보리 큰도감 시리즈 중 이 책『식물도감』에는 우리나라에 나는 식물 366종이 수록되어 있다. 두고두고, 보고 또 보고, 심심하면 찾아보고 싶은 그런 책이다.
왼쪽 페이지에는 해당 식물에 대한 설명, 오른쪽 페이지에는 식물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해당 식물의 학명과 정보는 물론 계절별 특징 등 학술적인 것을 알려주는 것은 기본,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까지 알려주어 읽는 재미가 있다. 세밀화로 디테일하게 그린 그림 또한 시선을 끈다. 해당 식물을 자세히 오래 관찰하는 것은 물론, 계절별로, 단계별로 꼼꼼히 살펴보아야 가능한 일이기에 마음에 쏙쏙 들어온다. 계절별로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어서 더욱 가치가 느껴진다.
펼쳐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그림도 마음에 들고 설명도 실제 생활과 가까워서 흥미롭기 때문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이 완성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크다. 소장 가치가 제대로 느껴지는 책이다. 가격이 비싸긴 한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읽기에 좋은 책이고, 온가족이 함께 보아도 좋을 책이니 적극 추천한다.
[후회병동] 일본소설, 가키야 미우의 '후회병동'
이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데에는 소설의 소재면 충분했다. 소설 줄거리를 잠깐 보고 나니 이 소설을 다 읽어보고 싶었다.
타고난 미녀임에도 불구하고 꾸미기는커녕 예쁘다는 자각조차 없는 호스피스 병동의 여의사 루미코는 분위기 파악 못하기로 유명하다. 환자와 환자 가족의 컴플레인은 물론, 늘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 의사 이와시미즈의 마음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야 깨닫는 놀라운 둔감함의 소유자다. 그런 루미코는 언제나 고민한다.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것뿐 아니라 마음을 돌보고 동행하고 싶지만, 나처럼 둔한 사람은 맘처럼 되질 않는다'라고. 그러던 어느 날 화단에서 청진기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 청진기를 환자의 몸에 대면, 환자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리고 환자와 함께 후회로 남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책날개 中)
때때로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기도 후회하기도 한다.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그 일을 했다면 혹은 하지 않았다면 등등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암 말기 환자의 경우, 그 생각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후회병동』을 읽으며 갖가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보낸다.
삶의 마지막 순간, 생의 애착을 정리하고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우리는 누구도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다. 살고 싶고, 이왕이면 제대로 잘 살아보고 싶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 순간, 이들처럼 생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에 되돌리고 싶은 어느 순간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각기 다른 특징이 있으면서도 공감할 법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마치 내 인생을 다시 되돌려보는 듯한 생생함이 있다.
표지의 색감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 책에도 그런 감동이 있다. 한 장 한 장 아껴서 읽게 되고, 감동과 여운이 오래 가는 소설이다. 어느 순간에 읽어도, 누구에게든 생각에 잠길 수 있도록 하며, 억지로 짜내는 감동이 아니어서 더욱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이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천년의 질문] 조정래 장편소설, 천년의 질문
이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혹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고구마처럼 답답해지는 마음을 술 한 잔 하며 풀어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애써 외면하던 문제들,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바라보던 현실, 누군가 개인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던 문제들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소설의 역할일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마주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준다.
이 소설 속에는 정곡을 찌르는 대사와 상황이 즐비하다. 남 이야기이지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발언이나 상황도 많이 보인다. 또한 돈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까지 밑바닥을 찍을 수 있을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소설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아쉬움, 삶에 찌들어 무뎌져버린 사람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명분 하나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의 고집스런 무기력, 그런 사람까지 배신할 수 있는 돈의 위력 등 온갖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이 어우러져서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친다. 그래서 이미 무기력한 나의 힘을 쭉 빼놓는다.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에 답답하지만,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주어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었다.
또한 이번 작품의 첫 공개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사이트를 통해 국내 최초로 '오디오북 선공개'를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1권을 30회로 나누어 매회 약 20분 분량으로 녹음을 했는데, 성우 9인이 드라마 형식으로 낭독한 작품이다. 연재 기간 동안 30만 회 이상 조회되었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베스트 5위권을 지속하며 오디오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독자와의 소통을 놓치지 않으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작품을 완성한 것이다. 답답하고 불편하고 어두운 것도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사회 각계각층에 대한 심층 취재와 치밀한 자료 조사로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으니 이 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