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맛있는 거 먹고 기운 차리고 기분도 좋아지고 싶은데 도대체 무얼 먹으면 그럴 수 있을까? 무얼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그런 고민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그날이 그냥 평범한 날이 아니라 바로 '지구 멸망 일주일 전이라면?' 생각해 보니 더 긴장된다. 잠깐 생각해 보고 말 문제가 아니라 한참을 고민고민하다가 결정해야 할 듯하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막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제목에 이끌려 이 책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글 신서경, 그림 송비의 작품이다.
저는 원래 호객 행위 같은 걸 잘 거절 못 하는 소심한 성격입니다. 2014년도쯤 길을 가다가 붙잡혀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뭘 할 거냐"는 이상한 설문조사를 하게 됐습니다. 소시민인 저는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았고,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밥을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이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입니다. (작가 후기 신서경)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1장 '지구가 멸망한다면 어제보다 맛있는 사과를', 2장 '만 칼로리 케이크', 3장 '소화가 안 될 땐 매실', 4장 '뒤늦은 시루떡', 5장 '죽을 준비', 6장 '사랑의 도시락', 7장 '지구 최후의 만찬'으로 나뉜다.
지구 멸망 일주일 전으로 상황이 설정된다. 일주일 후에는 지구가 그냥 멈추고 인류가 살아날 확률은 3%라는 것이다. 상상 속 상황은 실제 상황이 된다고 해도 딱히 다를 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 멸망이라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한 철학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그러면 사과는 대체 언제 먹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제보다 조금 더 맛있는 사과를 먹는 거다. (86~89쪽)
지구 멸망에 관한 상황 설정은 그렇게 하고, 본격적으로 D-day를 향해가면서 봉구의 먹방을 진행하니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맛깔스러운 방송에 홀리듯 읽어나간다. '만 칼로리 케이크 저거 만들어 먹어보고 싶어, 집에서 시루떡을 만들어 볼까, 도시락도 맛있겠네' 등등 이 책을 읽으며 먹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지구 멸망의 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의 복잡미묘한 마음과 맛있는 음식이 긴장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같은 음식이어도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지구 멸망 일주일 전'이라는 특별상황이 더 참신하게 다가온다. 그때 무엇을 할까에 관해서는 이미 질문을 들어보았고, 그냥 평범하게 지내겠다고만 막연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책을 계기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보아도 재미있을 듯하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온다면 만화 속 상황처럼 집밥으로 일주일을 만들어 먹으면서 보내게 될 것이다. 식당이나 마트도 문 닫고, 전기 공급도 끊기고 그렇다면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오히려 평범한 한 끼 중에 일주일의 메뉴를 생각해두어야겠다.
봉구가 지구 최후의 만찬에 사람들을 초대해 그 사람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 준 장면은 감동을 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더 먹고 가>의 임지호 셰프를 보는 듯하다. 같은 음식이어도 그 사람만을 위해 의미를 담은 요리는 감동받기에 충분하다. 재미와 감동, 긴장과 안도감, 이 모든 것을 잘 담아낸 한 그릇 음식 같은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