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당신이 놓친 역사의 한 축'으로 '암살'을 이야기한다. 앞으로는 정치, 종교, 혁명, 전쟁 옆에 암살의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약간의 호기심 정도였는데, 책 뒤표지의 다음 이야기에 이 책이 무척 궁금해졌다.
《손자병법》을 쓴 손무는 "십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나가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고 말하며, 그에 비해 암살은 아주 경제적이고 뛰어난 전략이라고 극찬했다.
키루스 대왕은 식사 자리, 술자리, 잠자리보다 암살당하기 적합한 장소는 없다는 사실을 늘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는 잠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내인 리비아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손에 죽을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는 리비아가 건넨 독 발린 무화과를 먹고 사망했다.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정도면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질 것이다. 내 마음도 그 마음으로 이 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암살의 역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존 위딩턴. 런던에서 TV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내어 전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책날개 발췌)
실제 암살자들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소설가처럼 현실 세계의 암살자들의 심리를 낱낱이 알려 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제 암살자가 제임스 본드처럼 자신감 넘치는 멋진 킬러인지, 혹은 말로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초조해 하고 자기 의심이 많은 서투른 청년인지 확인할 수는 있다. 이 책에서 4000년이 넘는 암살의 역사를 다루며 실제 암살자의 모습을 파헤쳐 볼 것이기 때문이다. (12쪽)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된다. 1장 '전쟁보다 경제적인 전략: 고대의 암살 사건들', 2장 '얽히고설킨 욕망의 분출: 로마제국과 중세시대', 3장 '더렵혀진 기사도 정신: 배신으로 얼룩진 기사도의 시대', 4장 '신이 암살을 원하신다: 종교전쟁시대의 암살', 5장 '혁명의 단짝: 근대를 휩쓴 암살 사건들', 6장 '더욱 생생해진 암살: 오늘날까지 이어진 암살의 굴레', 7장 '빗나간 죽음의 그림자: 살아남은 자들'로 나뉜다.
이 책은 일단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생각보다 엄청 흥미롭겠구나' 라는 느낌이 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류 역사상 암살의 첫 희생자라고 알려진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기원전 2333년에 목숨을 잃은 이집트의 파라오 테티라는 정보부터 시작된다.
사실 암살 만으로 역사를 훑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저자가 엄청난 이야기꾼인 듯하다. 쿵쿵쿵~ 3D 영상으로 음악과 함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는 듯하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볼 때 암살을 시도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얼마나 조마조마하며 긴장감 넘치는가. 그 분위기로 읽어나가면 되겠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짚어보는 시간이 흥미롭다.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후 스물다섯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살아난 것이다. 7장의 처음에 히틀러를 다루는데, 그럼에도 그는 살아남은 자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중에서 게오르크 엘저라는 공산주의자 목수가 꾸민 암살계획이 가장 참신했다고 하니, 그 이야기를 남겨본다.
1938년 말부터 엘저는 시한폭탄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며칠 밤을 지새운 끝에 폭탄 제조를 끝냈고 1923년에 히틀러의 뮌헨 폭동이 일어난 장소인 뷔르거브로이켈러 맥주집에 잠입했다. 1939년 11월 8일에 히틀러가 그곳에서 연설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엘저는 연단 옆의 돌기둥에 비밀 구멍을 뚫어 놓았다. 비록 미수로 그치긴 했지만 이날은 나치가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념일이었다. 마침내 엘저는 폭탄을 설치하고 히틀러의 연설 중간쯤 터지도록 설정해 두었다. 폭탄은 계획대로 잘 작동했고 아무런 문제 없이 정확한 시각에 폭발했다. 천장 일부가 부서져 연단 위로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10여 명이 부상을 입었고 여덟 명이 사망했으나 그중에 히틀러는 포함되지 않았다. 전쟁 때문에 히틀러의 일정이 변경되었고 사전 계획보다 더 일찍 연설을 마쳤기 때문에 폭탄이 터졌을 때는 히틀러가 떠난 지 13분이 지난 후였다. 엘저는 붙잡혀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종전을 며칠 앞두고 처형당했다. (361쪽)
책에 보니 1939년 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게오르크 엘저를 기리는 베를린의 독특한 기념물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이 또한 인상적이다.
옮긴이의 말에 보면 이 책에서 다룬 수많은 암살 사건 중 현재 우리의 삶을 가장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은 사건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지 질문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룬 수많은 암살 사건 중 현재 우리의 삶을 가장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은 사건을 하나 꼽는다면? 단연코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조피 초테크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지 않을까.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으로 작용했고 사상 초유의 규모로 벌어진 첫 세계대전 이후로 정치·경제·사회 구조가 너무나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암살범 프린치프는 자신이 저지른 암살로 인해 이렇게까지 세계가 재편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402쪽)
그동안 암살은 단지 개인의 우발적인 범죄 정도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암살에 대해 '역사의 변곡점'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짚어볼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