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영화를 보며 현실이 따뜻해짐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긋지긋한 일상에 무미건조한 일들만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삶이 무기력해질 때, 한 편의 영화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행동에 옮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는 이탈리아의 베로나와 시에나를 오가며 이미 노인이 된 클레어와 로렌조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50년 전 어긋나버린 첫사랑과의 재회, 그 만남 자체보다는 그곳의 풍경에 매료되어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메말라버린 감성을 일깨워줄 달달한 배경은 이 영화를 보는 묘미다. 클레어 할머니의 첫사랑, 로렌조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 나도 마음을 졸인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 어쩌지?', '혹시 늙어버린 겉모습에 실망하시지 않을지?' 만나지 말아야할 인연인지도 모를텐데, 혹시나 실망하고 절망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엔딩 화면이 올라가고 한참 지나서야 주섬주섬 짐을 챙겨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줄리엣의 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그런 곳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속의 장소 '줄리엣의 집'에 대한 궁금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풀었다. 그곳은 실재하는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베로나,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행렬에 나도 동참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곳에 온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도 함께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짐을 싸고 여행길에 올랐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 그들의 사랑은 진행중?!
-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의 집'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때문에
민망하게 색이 바랬답니다.
낙서 속에 사랑을 찾아보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서인지, 원래 그곳은 그렇게 유명했던 것인지, 그해 겨울에는 방문자들이 정말 많았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사랑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기에 베로나는 사랑을 찾는 사람들에게나, 이미 다가온 사랑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결국 그 누구에게나 찾아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영화보다는 살짝 냉정하다. 첫날 가본 그곳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사랑을 노래한 장식용 나무는 그 다음날 가보았을 때에 치워져 있었다. 거기에 매달려있던 사연들 중 일부는 눈녹은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사연을 매단 사람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버려 그 모습을 볼 수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영화 속에서는 줄리엣의 집에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보내주는 인력이 따로 있어서 답장도 받던데, 현실과 영화는 그렇게 약간 다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영화보다 무미건조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 생의 어떤 한 순간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마법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며 그런 순간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가끔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기억을 되돌려 추억에 젖어보게 된다. 언젠가 또다시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면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싶다. 그리고 결심하리라. 사랑에 늦은 순간은 없다. 사랑하라, 죽기전에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