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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홍시뿐이야

[도서] 내게는 홍시뿐이야

김설원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달짝지근한 향을 풍기며 보름달 같은 얼굴에 불을 밝히는 홍시.

말랑말랑한 홍시를 조심스레 잡고 꿀떡꿀떡 넘기다 보면 세상사 걱정 따윈 잊게 된다.

홍시는 삶의 위안이자 구원자다.

제목에 홍시가 들어갔단 이유만으로, 표지 정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홍시만으로 이 책을 손에 잡을 이유는 충분했다.

쉽게 손에 잡힌 책은 홍시처럼 꿀떡꿀떡 내 목을 타고 들어와 지근하게 파고 들었다.

 

 

   이 소설에는 쿨하다못해 매정하기까지한 어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그간 키워 줄 만큼 키워줬으니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자.' 한마디로 자식과의 연을 끊는다.

성인이 된 자녀라면, 자기 밥벌이는 할 정도라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주인공 아란이는 18살이고 고등학생이다.

하나뿐인 가족인 엄마의 일방적 선언에 아란이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그래도 밥과 집 문제는 해결해 준다.

돈을 빌려준 지인의 집에서 밥과 집 문제를 해결하라며.

너는 채권자이니 당당하게 그 집에 살면 된다고.

엄마는 도시에 나가 돈을 벌어오겠다고 한 뒤로 연락을 끊는다.

채권자이나 눈칫밥 먹던 아란이에게 채무자의 집도 망하면서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

  

 

   아란이는 오롯이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자신을 보호해 줄 어른들의 울타리는 더이상 없었다.

어른들은 무심코 말한다.

책 속에 길이 있으니 학생은 본분인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사람 구실이라도 하지 않겠냐고 한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몸 하나 누울 작은 공간조차 없는 아이에게 책이 무슨 소용인가.

책보다 생활정보지를 쥐어주고 여기서 일자리와 집부터 구하라고 하는 게 현실이다.

아란이는 학교를 자퇴하고 생활정보지부터 챙긴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에 익숙한 삶일지라도 누군가와 함께인 것과 혼자는 다르다.

가난도 함께 할 이가 있을 때는 덜 초라하고 덜 외롭다.

아란이는 스스로의 삶을 꿋꿋히 꾸려가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한다.

가난한 이들은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면서 가족이 되어간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며 엄마가 좋아했던 홍시를 산다.

어느새 사모은 홍시가 방안 그득 달큰한 향과 온기를 내풍긴다.

엄마를 향했던 깊은 원망도 달큰한 홍시 앞에서 그리움과 온기로 채워져 간다.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부러, 또는 무심코 샀던 홍시 스물일곱개. 이백개도 좋지. 그럼 나는 홍시랑 살겠네. 홍시라도 괜찮아. 내게는 홍시뿐이야.

 

   이 소설의 기저에는 『데미안』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않으면 안된다."라는 데미안의 구절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주인공 아란이의 혹독한 성장기가 외부세계와의 대결같지만 본질은 자기 자신으로 이르는 과정이다.

아직은 연약한 다리지만 세상으로 내던져진 아이는 돌처럼 굴러가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에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돌은 구를 때마다 자신이 깎여 나가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고통의 과정이 삶이며 세계이다.

 

 

   삶에서 가장 빛나고 생기있던 시절은 10대 후반이었다.

학업의 부담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지만 그보다 희망과 꿈이 앞섰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매년 4월은 찾아오고 봄꽃의 향연이 끝날 무렵이면, 파릇한 아이들을 생각한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만 했던 아이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살고자했을 아이들.

살길을 찾는 아란이를 보며 더 많이 떠올렸다.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살길까지 막아 버리는 매정한 어른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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