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습을 생각하다 문득 벤다이어그램이 떠올랐다.
나의 삶은 벤다이어그램 밖으로 삐져나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삐져나간 부분이 모난 것처럼 여겨져 깎아 내거나 그럴 수 없는 건 숨겼다.
타인의 눈과 귀와 입이 두려워 진짜 나를 감추기에 급급한 소심한 삶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교집합으로 더 가까이 들어가려 발버둥 쳤다.
교집합은 ‘평범’이었고 거기에 속했다는 것은 안정을 주었다.
나는 수시로 공상에 빠지고 엉뚱한 질문을 하는 아이였다.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딴 생각을 하다 혼이 나고 엉뚱한 질문으로 또 혼이 났다.
자라면서 공상과 호기심은 점점 줄여야 했고, 머릿속 말문을 닫고 잠자코 공부만 했다.
모범생의 껍데기를 쓰고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삶의 순서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 이게 순리라 믿으며 살아왔다.
엄마가 되고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린 시절의 내가 다시 다가왔다.
아이의 엉뚱함과 솔직함이 친구들에게 이상한 아이로 비춰질까 “그러면 안 돼”라는 말을 반복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며, 내가 해왔던 것처럼 아이의 진짜 모습을 깎아 내고 있었다.
세상에 저항하기보다 수긍하고 적응하는 것이 안정된 삶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소심한 사람이 세상에 던지는 유쾌한 저항’이라는 문구에 꽂혀 읽은 책이다.
소심한 사람도 저항할 수 있구나, 저자가 세상에 어떻게 저항하는 지 엿보고 싶었다.
저자는 현명한 물질주의자, 신중한 잡식주의자, 배우는 다원주의자로 세상 앞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세상을 향한 소극적 저항이라지만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작은 변화는 충분히 가져 온다.
그간 감추기만 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들을 조금씩 꺼내도 괜찮다는 용기와 위안을 준다.
내가 바랐던 ‘평범’은 사실 실체도 기준도 따로 없는데 스스로가 옭아맨 감옥은 아니었을까.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유난 떠는’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얼마 전 천 가방에서 꺼낸 무거운 유리통을 내밀며 포장 주문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편리함을 과감히 버리고 자신의 소신껏 행동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한명의 그런 수고가 환경오염을 얼마나 막겠냐고 유난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명일 때는 지구 환경에 미미한 영향을 이겠지만 그런 개인이 하나둘 늘면 세상은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남과 다르면 ‘특이하다, 이상하다, 별종이다’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평범함 앞에서 특이하고, 이상하고, 별종인 사람들은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당한다.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존중받을 수 있고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너그러운 사회였으면 한다.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관성 앞에 수긍하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관성을 벗어나기 위해선 저항을 이겨낼 큰 힘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큰 힘이 없어도 작은 저항만으로 나의 삶은 충분히 달라진다.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를 되뇌고 있을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에게 저자는 말한다.
"원래 그래"따윈 없으니 관성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저항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