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찾는 책이 있지만 나를 찾아오는 책도 있다.
힘든 시기에 나를 찾아오는 책 덕분에 큰 위로와 힘을 얻은 적이 많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할 때면 책부터 찾는다.
책은 어김없이 내게 위로를 전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김초엽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책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광고를 보고 책의 표지가 예쁘단 이유로 구매했다.
나중에 집에 도착한 책을 보고 나서야 장르가 SF소설이란걸 알았다.
평소 즐겨 읽지 않는 장르인데다 SF소설 작가 중에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외국 작가라면 모를까, 우리나라에 SF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책에서 다채로운 감정을 느꼈다.
경이롭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세계를 창조해 낸 걸까.
인간 중심의 문학에만 갇혀 있던 내게 인간 외의 존재와 세계가 새롭다 못해 경이로웠다.
나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었다.
마음의 빚을 진 지인들에게 책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SF소설이 이 정도로 놀라워요, 이 책은 꼭 읽어야 해요, 이 작가 책은 앞으로 꼭 사세요.”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전하면서 말이다.
책뿐만 아니라 동시에 작가에게도 경이로움을 가졌다.
작가가 평범한 인류가 아니라 비범한 신인류처럼 느껴졌다.
『책과 우연들』은 SF소설로만 만나던 작가의 첫 에세이다.
작가가 그간 만난 책들과 읽기에서 쓰기로 나아가는 여정을 세세하게 담았다.
나는 작가가 경이로운 이야기 주머니를 어마어마하게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쓸 때면 밑천이 없어 두려웠다는 작가의 고백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쓸 밑천이 없기에 계속 책을 읽어야만 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끌어모으고 모아서 이야기를 빚고 있었다.
작가는 비범한 신인류가 아니라 나와 같은 평범한 인류였고 끝없는 노력으로 밑천을 채워가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막막한 일이었다.
작가는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과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말한다.
준비가 덜 되어서 또는 밑천이 없다는 두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자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경이롭다 칭송했던 작가가 계속 노력하며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단 사실에 감동 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가 다가와 순식간에 놀라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기적을 바랐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꿈이었나싶다.
요행을 바랄 때가 아니라 더 많이 읽고 쓰며 밑천을 채워야 한다.
더 많은 책이 우연히 우리에게 도달하면 좋겠다.
그런 우연한 충돌을 일상에 더해가는 것만으로
우린 충분할지도.
- 『책과 우연들』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