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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도서] 트라우마는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가

폴 콘티 저/정지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푸른숲 출판사 북클럽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트라우마에 빗댈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비, 그것도 끊임없이 내리는 비다. 처음에는 가랑비처럼 느껴지지만, 아무런 보호막도 없다면 우리는 뼛속까지 푹 젖게 되고 물은 계속 주위에서 차고 올라와 결국 고통의 강이 되어 우리를 휩쓸어 간다. (p.64)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아직도 밤마다 꿈을 꾼다. 돌이켜 짚어보면 딱히 닮은 점을 찾을 수도 없는데 찰나에 겁을 먹고 주저앉아 비명을 지르고 도망친 적도 부지기수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낀다. 툭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밤새 웅크려있는 삶은 여전하다. 꿈이 두렵고 잠이 안 오고, 잠을 못 자니 하루종일 피로에 시달리고 규칙과 기억에 집착한다. 이런 삶을 살아내야할 이유가 있을까.

언젠가부터 트라우마와 PTSD는 꽤나 친숙하고 가벼운 개념이 된  것도 같다. 굳이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 PTSD온다~"는 식의 우스개를 들으면 네가 내 삶을 알기는 하냐고, 알고도 그렇게 편하게 떠들 수 있겠냐고 멱살이라도 틀어쥐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리니. 세상에 쉬운 삶 하나 없고 편하게만 사는 사람은 없다고들 하지만 개중에는 회복할 수 없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느끼게 하는 사건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할 수 있다느니, 소중하다느니, 긍정적으로 살라느니... 찬사와 응원을 늘어놓는 건 역시나 독일테다.

 

안다. 스스로를 용서하라느니 용기를 가지라느니 입에 발린 싸구려 위로는 자기혐오를 보태줄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용서할 수도, 그래서도 안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주저앉고 헐떡이고 비명을 지르는 삶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바뀌지 않고 달라진 것도,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개인의 시선만 달랑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피상적이고 얄팍한, 자고 일어나면 털어버릴 수 있는 고민 정도로 치부하는 온갖 자기계발서에 넌덜머리가 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이 책은 제목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져내리고 전능한 의학, 햇살같은 자기긍정이 그 시궁창을 얼마나 멋지게 구해내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제목처럼 트라우마가 어떻게 삶을 파고드는지, 왜 떨쳐내기 어려운지, 어째서 개인이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지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운영 편의에 치우친 의료시스템이 환자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복지체계와 아동청소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헛물만 켜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어떤 트라우마는 심리적 손상을 의도한 폭력의 결과물이고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 얼마나 문제적이며 어떻게 변해야하는지도, 개인과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그 모든 것을 때로는 관련 분야 전문가와의 대담으로, 저자 자신을 포함한 개인들의 사례로, 의료시스템의 일원으로, 심리사회전문가의 시선으로 설득력있게 풀어나간다.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 겪는 수많은 트라우마는 실제로 그 안에 심리적인 의도가 있다는 거죠."(p.176)

"(...)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힘의 일부는 사람들의 심리를 바꾸는 데 들어갑니다. 그 이유는 트라우마를 겪으면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인식은 물론 세계관도 바뀌기 때문이죠."(p.177)

 

당신은, 나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적어도 모두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뭐라도 해야하고, 어떻게든 변해야 한다. 고통을 또다른 고통으로 앙갚음하며 모두를 트라우마의 교묘한 술책 속에 던져주지 말아야한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트라우마를 전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다. 사람은 죽고, 차 사고는 발생하며 질병을 얻는 것은 생물학적인 팩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불필요한 트라우마가 우리를 죽이지 못하도록, 우리의 삶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지금보다 훨씬 더 자신의 몫을 잘 해나갈 수 있다.(p.197)

 

책에 쏟아진 찬사를 나열하지는 않겠다. 누가 얼만큼의 고통에서 "구원"받았는지 감탄하고 싶지도 않다. 누구라도 개인의 고통을 부수고 구해낼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말이 되지 못한 울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운지를 안다. 때문에 이 책이 당신을 빛처럼 찬란한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장담하지는 않겠다. 다만, 삶에 짓눌리고 더는 갈 곳도 다른 삶을 기대할 수도 없다고 느낄 때 당신을 도울 책이 될 거라고, 최소한 고개를 들고 상처를 움켜쥘 마음이 들게 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가 전능하고 위대한 위안의 신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과 같이 부서지고 회복되지 못한 삶을 끌어안고 있다고, 당신이 스스로가 얹어주는 고통 속에 버티려고 애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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