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그 순간의 감동이 인생의 길을 바꿔놓기도 한다. 안정적인 삶을 내던지고 찰나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자연으로 떠나는 것처럼.
그러나 때로는 바로 그 순간이 평생을 살아내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뜯어보자면 딱히 엄청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태양에서 날아온 입자가 행성의 대기와 충돌하면서 잠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위치와 때에 따라 그다지 드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감동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경로를 바꿔놓기도 한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힘, 사람을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p.222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운명의 해였던 2009년, 12월 초에 오로라 여행을 다녀왔고, 중순에 사직서를 냈고, 말일 자로 자유인이 되었다.
p.231 오로라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동일한 모습은 단 한 순간도 없다. 희미한 날도 많지만 오로라 폭풍과 같이 온갖 색의 빛이 밤하늘 전체를 물들이며 휘몰아치는 순간을 맞으면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절정의 순간은 한 번 찾아오기도 하고 하룻밤에도 여러 번 반복되기도 하고 정말 운 좋은 날은 밤새 난리를 치며 사람의 진을 빼놓는다.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절정의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빛, 오로라는 누군가에게는 정령들의 춤, 누군가에게는 신의 계시 호은 하늘의 촛불, 혹자에게는 망자를 천국으로 이끄는 여신의 증거로 이해되어왔다. 드물지만 조선에서도 관찰된 기록이 있다. 지구 자기장의 중심이 지금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먼 훗날 어느 밤에는 하늘을 뒤덮는 장관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을지 모른다.
p.17 오로라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환상적이지만 실제로 보면 훨씬 신비롭다. 우선 그 장대한 규모에 놀라고, 너울거리는 움직임에 빠져든다. 오로라는 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p.25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로라를 '정령들의 춤'이라고 불렀으며, 중세유럽에서는 신의 계시로 여기거나 하늘에서 타오르는 촛불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바이킹족의 전설에서는 전쟁의 여신 발키리가 전사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때 방패에서 반사된 빛이 오로라라고 전해진다.
태양계 내에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행성은 아마도 지구 하나 뿐이라고 추측된다. 그나마 생명이 존재했으리라 추측되는 곳은 아마도 화성 하나 뿐이다. 식어버린 땅, 붉은 모래가 날리는, 오래 전에 죽어버린 행성. 그곳에서는 오로라를 볼 수 없다. 대체 저게 뭔가 싶은 덩어리에 가까운, 목성과 토성에서도 관찰되는 오로라를. 먼 옛날 태양계 생성 초기에는 화성에도 대기와 자기장이 존재했을 것이고, 신의 영혼 내지는 정령의 춤이 하늘을 뒤덮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차게 식어 자기장은 사라지고 희박한 대기는 태양풍에 흩어지고 만다.
생명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은 물과 대기라지. 어쩌면 오로라는, 빛나는 그 춤은 생명 혹은 어딘가에서 눈물짓고 있을 삶의 증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94 사막과도 같은 광대한 우주, 그 변두리 어딘가의 작은 별에 붙어 있는 아주 작은 행성에서 우연히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 오로라의 황홀한 빛은 지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증거다. 먼 훗날 다른 우주에서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그 행성에서도 오로라가 보일 것이다.
이 책의 반 정도는 오로라 화보집, 반 정도는 과학지식으로서의 오로라, 나머지 반 정도는 사진가 권오철의 생생한 오로라 관측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 (도합 150%의 힘으로 평생의 장관을 쟁취해보시라). 어느 쪽에 관심이 있어도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환상을, 누군가에게는 위안을, 누군가에게는 언제일지 모를 꿈의 씨앗이 될 셈이니 (그 환상이 191쪽 같은 '순식간에 얼어붙는 소변'이라면 시도하지 마시라. 라면이나 소변이나 몇 시간은 걸린단다).
잠들지 못하는 밤, 알지 못하는 낯선 땅의 겨울바람과 새하얀 달, 산과 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휘감아도는 색색의 춤을 떠올려보라. 어딘가에 존재하는 하늘의 파도, 빛의 장막, 보이지 않는 것들의 춤. 광대한 우주 변두리 어딘가를 맴도는 작은 행성의 아주 작은 존재인 우리를 살아내게 하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