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한 산책이 뭘까, 했다. 같은 제목의 시도 있기는 하지만,
이 시집을 읽고 나서는 '자명' 하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손끝에 그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고, 그런 냄새가 나는 듯하고, 그런 색감이 보이는 듯 해서였다.
감각들이 선명하게 묘사되는 시가 많다.
「명아주」 는 마치 그 밭에 나도 들어가본 것만 같았고 (실제로 가본 적은 없다)
「아주 외딴 골목길」 은 언젠가 이름 모를 골목을 기웃거렸던 생각이 났다.
특히 「모진 소리」 라는 시는 글이 아주 단순한데도 쩡-하고 금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 풍경들 중 근처에서 가장 익숙하게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은 「조용한 이웃」 이었다.
'봄기운을 두 방울 떨군 / 잔잔한 바람을 천천히 오래도록 씹는'다니,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는 능력이 참 부럽기만 하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시는 맨 처음에 나오는 「강」 이었다.
어디선가 읽은 적 있는 시인데 이 분의 시인 줄은 몰랐다.
여러 마음을 강에 가서 이야기하라고,
그리고 거기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고,
각자가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일들을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 가장 신선했던 시는 「노인」 이었다.
노인을 감정의, 행위의, 잠의 서민으로 표현한 것이 무척 와닿았다.
기억의 서민이자 욕망의 서민, 生의 서민이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우리의 모습을,
우리의 바쁨과 효율성을 잠시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나」 에 대해 묻는 질문을 생각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질문에 따라 분위기는 달라진다는 것은 알겠다.
말의 느낌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시 같다.
바쁜 일상 중에 시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잠시 멈추었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