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명상》 장정일
이 책은 고등학교때 헌책방에서 찾은 보물 중 하나다.
당시는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 중 하나였고,
더 오래 전에는 출간이 금지되기도 했던 한 시대의 어두운 모습을
안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장정일, 그 이름만 불러도 울렁거린다.
지하인간
내 이름은 스물 두 살
한 이십 년 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이네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 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 16p <지하인간>
내 열아홉 살과 스물 두 살을 장식했던 작품이다.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죽고 싶은 순간마다 꺼내 읽었고, 생각했고, 위로받았다.
무엇보다 멋지지 않으면 참을 수 없고, 아름답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허세 없이는 살 수 없는 내 찌질한 인생에
가장 '멋진 위로'를 해준 시인이기도 하다.
나는 올 때보다 천천히 걷는다
난관을 모면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시도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내일 굶주린다 해도, 겨울에 따뜻해지는 일은
꿈꾸는 일보다 중요하다.
처음보다 질긴 채찍으로 바람은 내 등을 후려치지만
난로가 있어 기름통을 가지고
밤 늦게 걸을 수 있는 자는 또 얼마나 행복한가?
- 24p <석유를 사러> 본문 중에서
'가난'은 낭만으로 무장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붙잡을 것은 낭만 밖에 없다고 또 생각한다.
장정일은 가난을 이토록 아름답고 끈질기게 표현하는 시인이었다.
이 시를 다시 읽으니 겨울이 기다려진다.
'도망가서 살고 싶다'
나는 어떤 물고기가 되어야 여기서 도망 칠 수 있을까?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충남 당진 여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 62p <충남 당진 여자> 본문 중에서
시가 위대한 것은 별 것 아닌 지명까지 아름답게 읽히기 때문이고
시인이 위대한 것은 첫사랑의 추억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여 나는 그만 아득해질 것이다'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 137p <햄버거에 대한 명상> 본문 중에서
옛날에 나는 꿈이나 사랑에 대해 명상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이나 아름다움에 대해 명상한다.
꿈은 어디로 갔나, 더듬더듬 이 시를 읽으며 다시 그 빈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으, 역시 시를 읽으면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가슴이 너무 뜨겁다.
모든 청춘은 가난한가 보다.
어제 친구들을 만나고 왔는데, 하나 같이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무섭고 두렵다.
늘 사랑 때문에, 연애 때문에, 일 때문에, 돈 때문에 쓸쓸해지고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러나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분명 내일이 더 무섭지만
오늘보다는 더 아름다울 테니까.
2012년 9월 15일 다 읽음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