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모으는 사람을 '수집가'라고 한다면 저 역시 수집가입니다. 라이언 캐릭터를 좋아해서 물건을 모으고요. 책을 모으고 한때는 수첩과 연필, 샤프를 모았어요. 책을 너무 많이 모아서 큰일 날 뻔한 적도 있어요. 책장이 휘어져서 무너질 뻔했거든요. 장마철은 최악이었어요. 책 곰팡이 냄새가 나고 책이 엉엉 울기도 했어요. 몇 년 전과 올해 과감히 책을 정리했습니다. 책이란 쌓여 있으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 다 읽은 책인데 좋아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 곧 읽을 것 같아서. 그렇게 모인 책들은 무덤처럼 깊고 조용했습니다.
피터 레이놀즈의 동화 『단어 수집가』에는 단어를 모으는 제롬이 등장합니다. 우표나 동전, 예술품을 모으는 아이들과 다르게 제롬은 낱말을 모읍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맘에 드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적습니다. 책을 읽다가 길을 걷다가도 만나는 단어를 모읍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말, 소중한 단어. 제롬의 낱말 책은 나날이 두툼해져 갑니다.
낱말 책들을 모으다가 이런 떨어트리고 말았어요. 제롬의 낱말 책에서 튀어나온 말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체계를 맞추고 논리에 맞는 말들로만 모았는데 말들은 자유롭게 뒤섞였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말이 모여 새롭게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 공책 속에 갇힌 말이 세상으로 뛰쳐나오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제롬의 발을 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수잔 손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가 되는 방법은 쉽다. 단어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요. 뒤죽박죽이 된 단어들을 가지고 제롬은 시를 썼습니다. 시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감동했어요. 단어를 사랑한 제롬은 시인이 되고 가수가 되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된 말이 아닌 어려운 말로 상대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말이 아닌 쉬운 단어로 말이지요.
작가를 꿈꾸고 있나요. 단어를 수집해 보세요. 모은 단어로 지금 곁에 있는 이에게 말해보세요. 괜찮아. 고마워. 힘내. 사랑해. 보고 싶어. 멋져. 통닭 먹자. 피자는 어때. 작가를 꿈꾸고 있나요.
『단어 수집가』를 읽으며 행복해할 얼굴을 떠올려 보세요. 행복의 순간을 함께 나누고픈 그 얼굴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실 건가요. 기쁨 옆에 참외. 한여름 옆에 보리차. 마음 옆에 웃음.
사랑한다 옆에 아이스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