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공동회고록이라는데 간 크게도 읽기 시작했다.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 작가와 어머니와의 관계. 사회적으로 어머니의 의미. 여성으로 살아가는 세상. 가슴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마침 얼마전에 엄마랑 시끄러웠고. 나는 아직도 독립하고 싶어하는 딸이라 읽는내내 힘들었다.
작가가 괜히 부러웠고. 난 아마 끝까지 화해하지 못할 것이라...화해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서.
나의 엄마, 딸. 어떤 관계인가.
서문부터 힘들어졌다. 작가의 엄마이야기. 나는 밴댕이라 작가처럼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받아들이려면 나를 내어주어야 하고 그게 끝이 없어서.
여성의 사회화를 얘기하면서 페미니즘이 개입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인간 안에 여성, 남성의 종이 존재한다고 느껴질만큼 세상이 그러니까.
그리고 변화는 한쪽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모성'과 '너무'라는 단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너무 정확하게 짚어져서 뼈 때린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건 내 성향 탓인가.
육아, 모성,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잘 읽었다.
시작은 불편했는데 끝나면서 알 것 같은 기분.
그냥 나는 나로. 아이- 딸에 의해 성장함을 인정하는 엄마- 여성-이 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할 일이다.
- 나는 집안의 '공공재'인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긴 하지. 그리고 정말 사적이고 싶지. 원룸에 독립하고 싶...
아마 나의 세대는 그런 교육을 받았는데 사회에서 요구받는 역할은 그렇지 못해 더 괴리가 있지 싶다.
역시 나의 엄마 이야기와는 다른 것 같다. 나의 엄마는 딸에게 욕망하고, 강요하는 편에 든다. 물론 유아기? 의 희생을 댓가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녀라는 관계의 타자여서 당연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어렸을때부터 벗어나고 싶었는데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나는 엄마같은 엄마가 되지 않는 것이 나와 딸과의 관계에서의 목표다. 서로의 독립을 응원하고 보장하는 것이. 그래서 어머니, 엄마가 아프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겠지만, 어쩌면 나는 모성을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마지막 보루쯤이라는 또다른 사회가 요구한 의미로 여기는 것인가.
제목에 끌린 이유가 그랬는데 부정할 수 없는 혈연 때문에 생각, 생활의 제약을 받는다. 좀 덜 받아야 하는데...
쯧...싸울것도 없는 어머니였구먼. 작가는 못해도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나는 표 안나고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바람은 달랐다. 그래서 힘들었고. 그들도 나름대로 삶의 궤적때문이었겠지만.
작가의 엄마는 외부적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었나보다. 못하면 자존심 상해하는 그 시대와 사회적 환경. 그리고 타고난 성향, 성정 때문이겠지.
그녀의 엄마는 동네의 공공재같았던 사람. 엄마로서 어땠는지도 기억 안나는 그런 엄마, 여성. 인간. 이었단다. 나의 기억은...
자의식이 강하고 자유에 대한 갈증이 있지만,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살아온 하지만 그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부러운 엄마네. 엄마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이란...
수동적으로 살았다고 스스로는 생각하지만 지나간 시간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그렇게 나쁜가?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모르겠지만 그때가 그저 본인이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 아닐까.
물론 이건 절대 페미니즘적 시각은 아니겠지만. 그냥 인간이기만 하면 되는...
어쩌면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글을 읽다보니 평범함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평범함과 달라 섬뜩했다.
이렇게 언어라는게. 말이라는게 무섭네.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포기하는 마음. 나는 이걸 원가족에게 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모두이면서 누구도 아닌 사라밍 될 수 있는게 배우였구나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는 엄마라니.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인식. 여성혐오, 성폭력, 성차별 모두 사적인 문제일 수만은 없다.
아무리 보수정치인들이 그렇게 주장한다해도 구조적인 문제에서 시작된다.
'당연한 것은 없다'
목소리를 내고 기존의 언어를 의심해야 내가 한 인간으로 설 수 있을텐데, 과정의 귀찮음 때문에 나도 포기를 선택하긴 한다.
기대를 포기하면 오히려 나를 지킬 수 있는 구조라...
내 딸은 그러지 않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약자의 침묵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관계가 어디 남녀 관계 뿐이랴.
여자라 불리하거나 위험한 세상은 잘못되었지만 성별로 한계를 규정을 지으면 안되지만 딸은 걱정되고 조심시킬 수밖에 없다.
이 어머니의 후회를 읽으면 난 조심을 다짐한다.
정상, 비정상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아야지.
딸도 엄마에게 비밀이 있을 수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작가의 일기장 이야기로 내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엄마가 일기장을 본다는 걸 알았던 나는 일기장에 비밀을 쓰지 않았다. 그게 오래되어 아무도 안보는 시기가 되어서도 자기검열하는 습관이 남았다.
아들이건 딸이건 분신으로 여기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모두 인간이다. 개별적이고 독립된.
거짓말쟁이 나쁜 아이 등등도 '말더듬'처럼 결정적 순간이 있을 수 있다.
몸에 대한 이야기에서 또 분노스럽네. 사랑한다면서 가슴 작다고 타박하는 것들. 왜 그자리서 니껀 왜 작아? 라고 대거리해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안타깝다.
성 대립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품평하는 일은 나쁘다.
아이의 실패가 엄마의 실패는 당연히 아니다.
사회적으로 정신의학적으로 모성을 그리 중요하게 취급하니까. 쌍방이 세뇌되는 것일 뿐이다.
긴 시간 같이하는 관계이니 영향이 클 수 있으나 자기 자신도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타인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잇단 말인가.
같은 성이라서 겪어서 알아서 사회가 잘못되고 바껴야 하는 건 줄 알면서 아이에게 조심시키는 것. 서로 상처받지 않기 어렵다.
어머니가 '실패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어머니에게 불가능한 요구를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나도...그만해야 겠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더 많이 산 역시 한 인간일 뿐이다. '신대신'이 아니라.
모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걷어낼 수 있을까. 삶속에 너무 깊숙하다. 하지만 노력해야지. 물론 피곤하겠지만.
여성의 일, 엄마의 일은 힘들다. 자아실현이나 즐거움, 꿈보다 희생이 먼저 떠오른다.
얼굴이 비뚤어질 정도의 고됨.
하지말자. 일단 신체적 건강이라도 챙길 수 있길.
보수가 따르지 않는 여성의 노동. 사회는 당연히 공평하지 않다. 장소마저도 남자에게 아무렇지 않은 곳이 여자에겐 두렵다. 어두운 골목, 당연히 조심해야지 생각하게 된다.
남성의 능력과 돈이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과 등가적으로 교환가능한 자원으로 여겨지는 사회는 정말 싫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래도 피해갈 수 있는데 눈이 나빠 제대로된 생각을 가지지 못한 - 그 확률이 훨씬 높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 상대라도 만나면 그것이...싸움으로 점철되거나 작가의 어머니처럼 포기 속에 살게된다.
여성의 일에 대한 두가지 신화에서 지적하는 가사노동과 아름다움과 일의 관계도 모두 겪어본 나는 후자는 미묘하지만 아마 더 나아지기 힘들 것 같다.
작가의 어머니가 시어머니인 할머니에게 갖는 감정. 억울함에서 비롯된 미움을 나는 친정엄마에게 가지고 있다.
나 하나 참으면 모두가 편안한데 그게 참기 싫어지는 시기가 오더라. 저 할머니, 우리 엄마랑 참 비슷하네.- 나도 끝까지 참지 못했다.
자신의 상황에 안도하고 만족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불만이 자라기 시작하는 건가.
그제야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그럼 내가 더 이상은 엄마를 참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인가.
나는 작가의 엄마와 시어미니의 관계에서 나와 엄마의 관계를 본다.
가두고 싶은 자와 자유로워지고 싶은 자.
나중에 후회가 남겠지만 지금은 단절 밖에 길이 없는 건가. 아마 나도 후회하겠지.
어떻게 견뎠냐는 딸의 질문에 책을 읽으면서 라고 얘기하는 어머니라...어쩌면 나는 작가 세대인데 작가 어머니와 비슷하네...
아주 어린 시절?사춘기때 내 생각을 말하며 엄마한테 맞서다 띵하고 들은 이야기가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는데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면 뭐하노 저렇게 싸가지가 없는데...이모가 그랫다. 많이 배운 자식이 불효한다고. 그냥 듣고 잊었어야 하지만 아직도 생각난다. 내 의견을 말하고 싶을 때 스스로를 검열한다. 책을 읽어서 나는 나쁜가 하고.
그 말을 한 사람은 잊었는지도 모르지만 요즘도 니가 선생이가 부모가 하실 때가 있다. 물론 안다. 선생이나 부모가 아니라도 내 생각을 말해도 되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근데 가장 가깝고 내 편이어야 될 사람이 그런 말을 자꾸 하면 나 스스로도 나를 부정적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옳지 않다. 아마 본인의 처지에 자격지심으로 홧김에 한 말일 것이다. 나는 무시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하게 된 상대를 가엽게 여겨야 할 것이다. 이것도 사회적으로 형성된 이 관계의 정형성 때문일 것이다.
가끔 말의 힘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나를 상처 입힐 수 없다. 그렇다.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것만 하고 말자. 기대가 상처를 부른다. 페미니즘이고 뭐고 일단 나의 생존이 먼저다. 그리고 나는 달에게 그러지 말자.
나는 나이가 들면 이 어머니처럼 오늘 하루 무사한 걸로 감사하자.
나는 아무도 기억 못하는 일이 슬프지 않을 것 같은데 ...흔적이 없으면 좋겠는데...
읽을수록 매일매일 평범한 날들을 행복으로 여기는 작가의 어머니가 부럽다.
완경기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엄마 역할을 하는 시기란다. 얼른 왔음 좋겠다 나는...나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다. 좋은 사람. 좋은 인간.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