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다가오는 것이나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병렬된 기억이니
몸의 경험 다해 별을 떠날 때 어떻게 하는가 그대는
유성 쏟아지는 기억 위로 사람들은 시간이란 문패를 달았다.
우리가 꽃 피는 별에서 보냈던 백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성취
나의 문패 위로 단 한 번도 겹쳐지지 않은 너의 문패와
이름없는 곰파에서 한 철 지낸 나의 전생은
혹한을 밟고 온 서릿발이다.
어느 생에서 나는 나귀를 부리는 마부였고
또 다른 생의 나는 자줏빛 가사 걸친 병든 라마였지.
암석 갈아 염료 짓는 화공의 손 같은 거친 세월이
문패 바꿔 달며 생을 위협하고
막고굴 제130호 굴 거대한 불상 아래 서면
무엇을 시주할까 슬픈 생이여
생이라 부르면 불현듯 생손가락이 아픈데
거슬러 흐르거나 흘러서 넘친다 해도
나의 생은 나의 생
사막에선 밤새 손가락 사이로 시간이 흐른다.
무덤처럼 쌓이는 시간의 사구 넘어
쓰리고 따갑구나 나의 업이여
남의 금생은
낙타의 혓바닥을 붉게 적시는 소소초 마냥 아프다.
시간은 다가오고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정 없이 늘어놓은 기억이니
몸의 경험 다할 때 나는 또 다른 행성을 윤회하라.
-김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