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한 후 터덜 터덜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잠자리에 든 아이들이 깰까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이럴 땐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품에 안기는 반려동물이라도 있었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련만 어릴 적 마음을 주며 키우던 반려동물을 사고로 잃은 후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고 있다.
지친 일상에 위로 받고 싶은 요즘 만난 게 박원순(우리가 알고있는 서울 시장은 아니다.)의 "식물의 위로"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식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식물은 보고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나름대로 정신세계가 있다. 존재 자체로 충분히 어떤 교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 곁에 두고 키우기로 한 반려식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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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려식물이 우리 삶에 줄 수 있는 일곱 가지 위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오랜 친구가 그리운 사람,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찾는 사람,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사람, 집중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 부담 없는 친구가 필요한 사람,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사람, 혼자 지내는 사람이 그 대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궂이 일곱 가지로 나눌 필요는 없는 듯 하다. 경계도 명확하지 않고 그냥 책 속 식물들을 하나씩 알아가며 식물들과 교감하는 이야기를 마음 편히 읽으면 된다.
"식물의 위로"는 여느 식물책과 달리 칼라풀한 식물 사진은 없다. 단지 깔끔한 일러스트로 대신한다. 그래서인지 읽기에는 편안한데 궁금한 식물이 나오면 직접 휴대폰을 꺼내 찾아봐야 할 정도로 책 속 일러스트로 식물을 알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래도 식물을 전공한 저자의 일상 속 따듯한 식물 이야기로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게 한다.
나름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베란다와 거실에 화분을 꽤 많이 두고 식물을 키우고 있다. 그런데 식물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배고프다고 아프다고 이야기를 안 하니 그저 동일한 환경에서 일정한 주기로 물을 주고 있다. 그런데 시들어 죽는 식물들이 종종 하나 둘씩 나온다. 책을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식물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종이고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식지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기에 각 식물의 리듬에 맞춰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 무지와 무관심으로 그동안 식물들을 키우는 게 아니고 괴롭혔던 건 아닌지 식물에게 괜시리 미안해진다.
책 속 여러 식물 중 내 무관심에도 잘 자라주는 반가운 나무가 있다. 바로 "산세베리아"이다.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하나씩은 있을 법한 식물이라 저자 또한 별다른 호기심이 있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산세베리아가 가진 놀라운 능력을 알게 되면서 산세베리아는 저자의 침실에 꼭 있어야만 하는 식물이 되었다고 한다.
산세베리아는 아프리카 서부 내륙 지역인 나이지리아 동부와 콩고에 걸쳐 분포하는 식물로 연 평균 기온이 20 ~ 30도 정도로 유지되고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가 몇 개월씩 지속되는 열대 사바나 지역에서 살기에 비가 오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물을 한껏 빨아들이고 서로 연결된 뿌리와 잎줄기에 수분을 저장해 둔다. 여기에서 산세베리아의 놀라운 능력이 숨어 있는데 한창 더운 여름이나 햇빛이 뜨거운 낮에는 잎의 미세한 숨구멍들을 모두 막아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길고 혹독한 건기를 버틸 수 있도록 물을 몸속에 저장을 한다.(그래서 한참 잊고 지내다가 아차 싶어 물을 줘도 꾹꾹하게 잘 버티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장수 식물이 산세베리아인가보다.)
산세베리아는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구멍을 열고 참았던 숨을 내쉬며 가스 교환을 시작한다.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 것이다. 밤에 독성 물질을 흡수하고 맑고 깨끗한 산소를 내주니 침실에 산세베리아를 두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반려식물과 친해지려면 먼저 식물의 정확한 이름부터 알아야 하고, 식물의 고향부터 생각을 해서 키우라고 조언을 한다. 집 안에서 키우는 반려식물의 꽃과 더 자주 만나려면 이 식물들이 원래 살던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어 주어야 꽃이 잘 피고 잘 자라준다는 것이다.
"식물의 위로" 속 식물들인 크리스마스선인장, 베고니아, 바질, 로즈마리, 염자 등을 하나둘 만나다 보면 어느새 각 식물의 특징과 키우는 방법도 알게되고 식물과 서로 교감하는 법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반려식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법은 책 마지막에 덤으로 있으니 식물을 키우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만 하다.
저자는 형편상 키우기 어렵게 되었다고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무지와 게으름으로 식물을 방치하고 죽게 놔두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라고 한다.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을 단순 비교하기에는 어렵겠지만 묵묵히 언제나 그 자리에서 녹색 잎과 함께 때로는 예쁜 꽃으로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식물에 대해서 좀 더 애틋한 마음으로 정성을 들여 키워야 겠다.
이 책은 식물에게 일방적으로 위로를 받으라는 것보다는 식물을 세심하게 잘 보살피고 가꿈으로써 식물에게 쓴 마음이 도리어 자신을 정화시키고 위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놓았던 화분갈이와 비료 주기, 무성히 자란 잎 정리를 주말에 당장 해야겠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