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 ~ 6년 전만 해도 클래식 음악과는 전혀 상관 없는 삶을 살던 내가 이제는 시간이 날 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클래식 책을 찾아서 즐겨 읽고 있다. 아직 클래식 음악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고 악기 하나 제대로 연주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클래식 음악은 내가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 클래식 음악 책들이 나오면 다른 책들보다 먼저 관심을 갖게 되는데 평소 좋아하는 도서 시리즈 중 하나인 "아무튼" 시리즈에서 나온 클래식 음악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튼 시리즈의 40번째로 나온 [아무튼, 클래식]은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후 클래식 음악 전문 기자로 일했고, 현재 대학원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연구하며 가요의 가사를 쓰고 있는 김호경 작가가 쓴 클래식 음악 에세이다.
그동안 읽은 클래식 음악 책들은 클래식 지식이나 클래식 관련 인물(작곡가, 지휘자, 연주자 등)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주로 다루었는데 이 책은 클래식 전공자로 관련 분야 전문 기자로 일했던 저자가 그동안 함께한 클래식 음악 세계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작년에 SBS에서 방영되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가 있다. 늦깍이 음대생 채송화와 유명 피아니스트 박준영이 주연으로 젊은 음악 학도의 꿈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인데 극 중 채송화의 친구로 나오는 윤동윤은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그만두고 현악기를 수리, 제작하는 공방을 운영하며 "지금 하는 일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고 재밌다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저자(음대 작곡과를 나왔지만 음악가가 되지는 못했다)는 주연이 아닌 조연인 동윤의 시선으로 클래식이라는 세계를 그려보고 싶다며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일반고를 다니며 성실히 음악 대학을 준비하고 작곡과에 들어왔으나 그동안 자신은 음악을 블록 쌓기 하듯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저자는 방황 끝에 허무하게 작곡 인생을 끝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위대한 선율이 얼마나 귀하게 태어난 것인지, 아름다운 음악은 또 얼마나 어렵게 아름다운지를 알고 그 아름다움을 글로 전할 수 있어 그나마 낫다며 선천적 재능으로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들을 남긴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천재성을 위트있게 시샘한다. "좋겠다. 천재들은"
책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저자답게 말러, 스트라빈스키, 드뷔시, 슈만, 리스트 등의 음악에 대한 전문성 있는 설명과 자신의 감상평을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굴렌 굴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또한 저자는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드뷔시의 음악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그리고 베를린에서>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음악이 있는 삶이 있어 다행이다"고 말한다. 음악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통역이 영어를 버벅거리는 바람에 터키 피아니스트의 대기실에서 쫓겨나 펑펑 울었던 추억부터 연주를 마치고 바로 다음날 인터뷰를 했던 음악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내겐 생소한 바이올리스트 김수현, 피아니스트 김다솔,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연 등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은 보람 중 하나다.
책은 클래식에만 국한되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돌아가신 아빠가 트럼펫을 연주하던 어린 시절 어느 날을 추억하며 아빠가 돌아가신 후 12년이 흐른 지금 남은 사람의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고, 독일인 이론가 아도르노의 주장을 논하며 자신의 일인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책은 한스 하머의 <캐리비안 해적>, <다크나이트>, <인셉션> 등 영화 음악과 케이지의 <4분 33초>, 미니멀리즘 음악인 <머큐리> 등 현대 음악을 넘나들고 대중가요인 레드벨벳의 음악도 소환하며 좋아하는 음악, 음악가들의 태도, 음악을 감상하는 의미,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헤아린다.
[아무튼, 클래식]은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들, 공연장 객석의 생생한 분위기, 연주자들의 음악에 대한 생각과 마음가짐, 클래식 세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소중한 시간을 함께한 클래식 음악에 대해 저자가 따스한 온기를 담아 이야기 한다. 책은 159쪽의 작은 판형의 책이라 휴대가 용이해서 외출 시 어디서든 읽기에 좋은 것이 장점이라 하겠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음악 전문 기자로 일했던 저자도 "클래식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통째로 사랑하지는 못 했지만 그 속의 작은 길들을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겪은 순간들을 꽤 소중히 여겨왔다."고 말했듯이 오래된 만큼 넓고 깊어 매력적이면서도 거대한 성벽인 클래식을 이제야 클래식 음악 듣기를 취미로 가진 입문자인 내가 통째로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사랑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오랫동안 즐기며 소중히 듣고 싶다.